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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06. 2015

interlude #6

Hey! What is your fxxking problem?

interlude #6. Hey! What is your fxxking problem?


로마 시내를 둘러보고 해질 무렵 스페인 광장 근처 스파그나 역에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생각했다. 유럽에 소매치기가 그렇게 많다더니… 악명 높은 로마도 안전하기만 하잖아? 아무튼 사람들 오버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니, 그런데 역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퇴근시간인가?


인파를 헤치며 간신히 도착한 플랫폼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곧 지하철이 도착했고 의식을 놓은 채 이리저리 떠밀리며 탑승을 마쳤다. 가장 바깥쪽에 간신히 탔기에 약간 긴장했지만, 다행히 문은 무리 없이 닫혔다. 그때 문에 달린 창문 너머로 10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문이 다시 열렸다.


“고(Go)! 고 인사이드(Go inside)!”


아이들 4~5명은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들어서는 소리를 질러대며 나를 지하철 안쪽으로 밀어댔다. 뭐지…? 치미는 불쾌감을 억누르며 동양인의 품격을 보여주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곧 지하철이 출발하고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음… 아이들이 급한 사정이 있었나보다… 싶었던 것도 잠시.


앞으로 메고 있던 사이드백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손길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여자아이 1명이 사이드백 위에 옷을 올려놓고는 그 아래로 손을 넣어 꼼지락거리고 있다. 억눌러오던 불쾌감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이씨! 야! 너 뭐하는 거야? 어? 손 안 치워?”


한국어로 내뱉은 고함과 노려보는 눈길에 겁을 먹은 걸까. 아이는 순식간에 손을 빼고 옷을 치우더니 고개를 숙인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아니나 다를까 사이드백 지퍼가 열려 있다. 진짜 소매치기였네… 사이드백에 손을 넣어 없어진 게 있나 확인하며 한 마디 더 쏘아붙이려는데….


“Hey! What is your fxxking problem?(야! X발, 뭐가 문제야?)”


갑자기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얼굴을 들이밀며 사납게 외쳤다. 음… 갑자기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그 친구의 외양이 중차대한 문제로 떠올랐다. 민소매 사이로 보이는 울퉁불퉁한 근육, 몸 곳곳에 자리 잡은 문신, 입술을 꿰뚫은 피어싱, 빡빡 민머리…. 나는 다시 품격 있는 동양인으로 돌아갔다. 노(No·아니)… 노 프라블럼(No problem·문제없어)….


이후 차렷 자세를 유지한 채 도착한 떼르미니 역.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확인해보니 소매치기당한 물건은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박한 바람 한 가지를 품어보았다. 지하철에 있던 사람들이 부디 날 품격 있는 동양인으로 기억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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