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다닌 헬스클럽을 탈퇴한 이유

만보 걷기와 아침 스트레칭 루틴을 한 세트로

by 엄재균

아마 1994년 즈음이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시점이다.

당시에 삼성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삼성 계열사의 업무 자동화 시스템 컨설팅 업무를 했다. 생산 현장의 업무를 전산시스템으로 자동화 프로세스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수원과 부산을 오가며 “업무 프로세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현상을 진단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제안하는 작업은 스트레스가 많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다 퇴근하거나 지방 출장으로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오버로드가 걸렸다.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회사의 일부 소모품밖에 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았다.


당시 삼성에서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회장의 신경영 슬로건 아래 전사 직원들의 고삐를 잡을 때였다.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다그친다.


곰곰이 생각했다.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슬로건은 맞지만 '주인의식'에 관한 메시지는 틀렸다.


조직의 문화를 바꿔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변화에 대한 역동적인 반응은 생명체가 가지는 생존과 번식을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역동성을 가진 기업도 다르지 않다. 환경 변화에 따른 반응과 적응은 기업을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주체들이 지속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의식’이라는 용어를 변화에 직면한 직원들에게 사용하는 것은 적합한 메시지가 아니다. 생뚱맞은 표현이다.


회사의 직원은 주인도 머슴도 아니다.


‘스튜어드십 - 집사역’ 이란 단어가 더 적확한 표현이다. 집사는 주인이 아닐뿐더러 머슴의 역할과도 전혀 다르다. 주인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리와 책임을 갖고 성실하게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삶의 주인은 권리와 책임을 갖는 각 개인이지만 회사의 주인은 아니다. 턱도 없는 소리다. 회사와는 근로계약 혹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책임지고 수행할 따름이다. 그 업무성과에 따라 공정한 기준에 의거하여 평가받으면 된다. 그 결과로 회사는 성장한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없었다.

‘공정함’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다.


내가 기업의 톱니바퀴 일부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직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이직을 생각했다. 대학으로 간다는 생각은 애당초 접었다. 연구실에서 지긋하게 앉아서 탐구할 성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업으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성공과 행복이 도대체 뭔지도 모르면서..


마침 창업투자회사의 투자본부장직 제안을 받고 승낙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업무라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지만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흘렀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진단을 받고 나서야 몸이 망가진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스트레스로 찌든 몸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헬스클럽을 찾았다. 당시 집에서 가까운 양재역 근처의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실내수영장이 넓고 깨끗하여 자주 다녔다. 두 아이들도 수영을 배웠다.


아침 5:00에 일어나면 바로 헬스장으로 출근하여 트레드밀에서 걷거나 수영하고 7:30 직장에 도착하여 지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바쁜 시간을 틈틈이 이용하여 보증금과 연회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최근 재작년까지도 학교를 오가며 중간에 잠깐 들러 트레드밀에서 걷기, 수영과 사우나를 함께 즐겼다.

25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3년 전, 걷기를 시작하면서 헬스클럽에 다니는 차츰 횟수가 줄었다. 굳이 헬스장까지 가서 트레드밀에서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실 트레드밀 위에 올라서 걸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너무 건조한 느낌이 든다. 무료함을 해결하기 위해 코 앞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스포츠나 뉴스를 보지만 따분함은 가시지 않는다. 그동안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라도 해야 몸이 풀린다.


어제 산책길에서 본 철쭉의 꽃망울이 아름답다


우연한 사고로 걷기를 시작하면서 모든 생활습관이 달라졌다.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헬스클럽에 가지 않더라도 일상의 생활 가운데 운동을 할 수 있다. 아침에 매일 집에서 스트레칭과 근력운동까지 하니 충분히 운동이 된다. '중강도 걷기와 아침 스트레칭 루틴'을 세트로 운동하면 굳이 헬스클럽에 갈 이유가 없다.


헬스장의 트레이너와 의사들이 늘 강조하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강화'를 한꺼번에 해결한다.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만 그냥 생각 없이 걸으면 효과가 없다. 중강도 수준으로 걸어야 한다.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은 가능한 천천히 해야 효과 있다. 푸시업도 한꺼번에 100개 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에는 천천히 1~5개부터 시작한다. 또 다른 효과도 있다.


수면시간이 일정하고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

한 때는 갱년기, 잡생각으로 인해 잠을 잘 못 잤는데 이제는 11시경에 침대에 들어가면 아침에 6~7시경에 깬다. 일정한 시간에 자고 깬다.


'만보 걷기와 아침 스트레칭' 세트 루틴을 통해 한 가지 더 얻은 게 있다.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생겼다. 특히 먹는 습관이다.


예전에는 빨리 먹으면서 과식을 자주 했다. 식이 요법을 하다가 어느 날 과식을 한 후 실망도 많이 했다. 특히 모임에서 식사를 맛있게 먹다가 과식하고 나면 뭔가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다. 건강검진에서는 항상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진단이 나왔다.


과거와 달리 천천히 먹으면서 식사량이 줄어들고 몸이 가벼워졌다. 아침마다 스트레칭, 일일 만보 걷기를 시작하면서 식사량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일상의 패턴과 식사습관까지 바뀌면서 속이 많이 편안해졌다.


실내에서 공기도 좋지 않은 곳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지루한 루틴을 할 필요가 없다. 야외에서 시원한 공기 속에서 어여쁜 꽃과 자연을 보면서 걷는 것이 훨씬 상쾌하다. 바깥공기가 아주 나쁜 날은 거실에 스텝박스를 두고 그 위를 오르내리락 하면 어느 순간 온몸에서 땀이 난다.




자랑만 한 것 같아 쑥스럽지만 한 가지만 더 보탠다.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걷기를 하면서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내면의 평정심까지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명계는 동적 평형 - 항상성을 이루면서 생명현상을 이어간다. 자연은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정과 복원력을 통해 스스로 원래대로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마음은 평형과 항상성을 유지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 느끼고 있다.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글쓰기를 통해서다.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있을 때 글을 쓴다.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 그 갈등의 골이 스스로 치유된다는 느낌이 든다. 글을 쓰고 난 후,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내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다소 높은 시선에서 나를 볼 수 있다.


인간만이 가지는 메타인지 능력이다.


높은 시선에서는 나의 생각과 행동과 습관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더 넓고 다양하게 인간관계와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많은 갈등이 사소하게 보일 수 있다. 스스로 자신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크리스천들이 골방에서 기도하고 불자가 좌선을 하는 이유도 '사유의 시선'을 궁극에의 수준까지 높이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


아내와 조그만 일로 서로 감정이 상할 때, 그때 나의 느낌을 글로 쓴다. 글로 쓰려고 보면 너무도 하찮은 나의 자존심을 발견한다. 내가 쓴 글을 나중에 보면 ‘이런 일로 갈등을 일으키다니’하고 어이가 없을 경우도 있다. 여하간 글로 쓰면서 감정의 찌꺼기를 다 풀어내어 버린다.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작년 9월경에 25년 이상을 다니던 헬스클럽에 일단 휴회를 신청하였다. 헬스장을 꼭 이용할 필요가 있는지 눈으로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만보를 걷는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헬스클럽을 오고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오히려 총시간은 절약된다. 연회비도 계속 오르고 자주 가지 않기 때문에 회당 사용료를 생각하면 가성비도 떨어진다.


평소 사우나를 좋아하고 여름에는 수영을 즐기기 때문에 지금까지 탈퇴를 하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직접 가서 25년 만에 탈회할 예정이다. 돈도 들지 않는 더 좋은 '만보 걷기와 아침 루틴' 같은 대안이 있어 기쁘다.

25년을 헬스장 다녀도 별 변화가 없었는데 3년 만에 작은 변화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하여

그 효과를 느끼면서 만보 걷기를 하고

만보를 걸으면서 어지러운 생각들이 정리되고

그 생각들을 메모하고

메모들이 모여

글 쓰기로 이어지고

다시 농밀한 책 읽기로 진전된다.

내가 선택한 그 순간을 온전히 즐겼다.


아침 스트레칭 루틴을 시도하여

배불뚝이에서 몸만들기로

아침 루틴으로 수면의 질이 향상되고

식사량 절제로 기저질환까지 예방하고

감정 조절로 가정의 화평까지

마음의 평상심을 유지하고

거기다 돈까지 절약

...

작은 습관 하나가 삶 전체를 변화시킨다.

이 변화를 혼자 간직하기에는 아깝다.
굳이 나처럼 뇌진탕으로 인해 두통을 겪고 난 후에야 '만보 걷기'를 시작할 필요 없이 모두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 한걸음을 떼어보자.


(Photo by Victor Freit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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