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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들의 청첩장을 받고 나서

애매한 관계의 청첩장을 대할 때

by 엄재균

며칠 전,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간 후배가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아들 녀석이 한국시각 00일 새벽 4시에 이곳 오스틴에서 혼인식을 올립니다.”

라는 메시지다.


그 아들이 어릴 때 자라면서 우리 가족과 함께 여행도 하여 또렷이 기억난다.

과천에서 함께 식사를 하려고 처음 가족이 만나는 날, 지하철 역을 올라오면서 얼마나 뛰어 다니던지 엄마가 뒤쫓아 찾던 그 장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친구가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나 어여쁜 신부를 맞이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게 되었다니 대견했다.


조금 있으니 모바일 청첩장을 보냈다.

직접 참석은 못 하겠지만 멀리서나마 축하를 해 달라는 의미일 게다.

청첩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지금껏 받은 수많은 초청 글인 “....아름다운 날, 귀한 발걸음으로 축복해주시면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모바일 청첩장과는 달랐다. 심지어 “마음 전하실 곳”을 표시하여 친절하게도 은행계좌까지 청첩장에 적힌 경우도 있다.


이 청첩장에는 “Our Story"라는 항목이 있었다.


열어보니 두 사람이 어떻게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을 쌓으면서 사랑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Narrative'형식으로 짧지만 의미 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쓰여 있다. 신랑신부의 선한 얼굴이 눈에 떠오르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행복하게 쌓아갈 것이라 믿는다.


축하의 메세시를 적으려다 바로 밑에 있는 "Photo"를 열어 보았다.

평상복으로 일상의 즐거운 순간들을 모아 담은 자연스러운 포즈를 한 사진들이다.

사진을 보면서 그 싱그러운 청춘의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공감할 수 있다.


최근에 받은 여느 결혼 축하 사진과 달랐다.


결혼 축하 사진에도 유행이 있는지 요즘 청첩장 속의 신랑신부 사진들이 거의 동일하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화려하게 입었지만, 어디서나 보는 똑같은 포즈를 하고 찍은 사진들과는 다른 싱그러움을 주었다.


신선하다.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신랑신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내 주위의 결혼식을 돌아 보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결혼식을 다니면서 ‘왜 이렇게 밖에 못할까’라는 마음이 항상 마음속에 남는다. 대형호텔에서 하는 화려한 결혼식도 여러 번 갔다. 식장은 화려하지만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남의 예식장에서 순서에 밀리면서 북적거림 속에 후딱 결혼식을 해치워버리는 경우도 보았다. 그나마 경건한 분위기에서 진행하는 성당이나 교회에서의 결혼식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들이 가장 애매하고 어려워하는 일 중의 하나가 “청첩장 돌리기 미션”이라고 한다. 오죽했으면 '미션'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청첩장을 누구한테까지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동안 미루었던 결혼식을 알리기 위한 청첩장 돌리기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한다. 집단 방역을 목적으로 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 라는 환경에서 더욱 난감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간혹 신랑신부와 혼주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스몰웨딩’이라 불리는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는데 현실 앞에서는 힘들다는 것이다. 상대방 집에서도 함께 공감을 해야 한다. 결혼식을 대하는 생각과 형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쉽지는 않으리라 짐작된다.


나 역시 아직 혼사를 치루지 않았지만 가능한 소박하지만 의미가 있는 작은 결혼식으로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축하할 만한 하객들만 초대하고 싶다.


누군가는 얘기한다.

“지금까지 나간 돈이 얼마인데..?”


“나는 가지도 않고 초대도 하지 않을 거야” 라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너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평생에 한번 뿐인데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해야지‘ 라는 마음이다. 청첩장을 주는 범위만 보더라도 어떤 경우는 청첩장을 받으면서 ’뜨악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예비 신랑신부의 입장에서는 직장에서 약간은 거리가 있는 어정쩡한 관계의 동료와 상사들, 한동안 뜸했던 친구들이나 선배들 같은 경우는 애매할 것이다.


이런 애매한 경우는 전하지도 가지도 않는 것이 좋다.

회사에서 혹시 “네 가지가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네 가지가 없다”것이 확실하니 상관하지 않거나 멀리하면 된다.


나중에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고 섭섭해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냥 해보는 소리’일 게다. 그 정도의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인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그런 말에 마음이 휘둘려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시내 특급호텔에서의 결혼식에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랑신부들이 아니고 그 부모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도중에 주연이 바뀐 영화를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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