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의 시간을 거쳐 어제보다는 나아지길 바라면서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 용량이 가득 차 ‘구글 포토’로 옮겼다. 아이폰에 있는 사진을 지울 필요도 없고 메모리 용량도 차지하지 않는다. 구글과 연동되어 폰에 있는 사진을 검색할 수 있어 상당히 편리하다.
핸드폰의 사진 화질이 좋아짐에 따라 사진 찍을 기회가 많다. 그 많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사람들 얼굴 표정을 유심히 본다. 물론 내 얼굴을 가장 많이 관찰한다. 대부분 인상을 쓰고 경직되어 있다. 왜 그럴까.
어릴 적 사진부터 최근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얼굴 표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요즘은 자주 웃으려고 노력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진실이다. 차츰 밝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빛바랜 사진이 하나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옷을 보니 한 여름인 것 같다. 엄마와 작은 누나와 함께 공원에서 찍은 것이다. 더위에 지쳐 있는 표정이다.
또 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생일날 아침, 머리맡에는 항상 작은 누나가 생일선물로 놓아둔 ‘소년중앙과 초콜릿'이 있었다.
달콤한 기억이다.
며칠 전, 그 누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로 안부 인사를 한 후에 누나가 내가 쓴 브런치 글을 읽었다고 말한다.
‘내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하면서 물어보니 카톡의 프로필 화면에서 보았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그런 기능을 몰랐다.
내가 쓴 브런치 글을 보면서 같이 공감하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순간 눈가에 찡한 감동의 느낌이 온다.
그랬구나..
누나에게도 나의 감정을 전할 수 있었구나.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과 같이 공감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기뻤다.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사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고 기록으로 남겨 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작 딸들은 읽지 않는 눈치다. 물론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도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의 내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다.
그동안 서로 바쁘게 사느라 명절이나 가족 행사에 잠깐씩 보았다. 서로 마음속 깊은 얘기를 나눌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매번 내가 글을 발행할 때마다 반갑게 읽고 세밀한 나의 감정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고마왔다. 무척이나...
한참을 통화했다.
서로 마음이 연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주였나.
어릴 때부터 함께 지냈던 오랜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약간 술에 취한 듯한 목소리다. 이 친구한테는 일전에 카톡으로 글을 보낸 적이 있다. 읽은 후에 바로 답장이 왔다.
“반려견 얘기가 재미있네” 멘트였다.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 사소한 것은 칭찬”이라는 코멘트까지 함께 받았다.
맞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약점과 결점을 갖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내가 불완전한 사람이라고 느끼면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려는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친구는 최근에 몇 개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내가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에 대한 글과 딸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을 글과 일상에 대해 얘기했다. 친구의 딸과 간단하게 인사하고 그의 아내가 전화를 이어받았다. 남편이 술기운에 너무 횡설수설하여 미안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기억을 더듬는다.
중학교 시절 그 친구와 함께 무턱대고 경주로 배낭여행을 가면서 찍은 빛바랜 사진을 찾았다. 밤에 텐트 칠 장소를 못 찾아서 어느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추위에 떨면서 잤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여행 후에 집에 돌아와 따스한 아랫목의 그 평온한 느낌은 아직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 그 친구가 그립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가까운 사람과 심지어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 공감할 수 있어 기쁘다.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을 살며시 드러내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있다. 가끔 내 글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는 친구도 있다. 글에서 직업 냄새가 난다고. 너무 분석적이라고.
그래 맞다. 근데 어쩌랴.
그게 난데.
나를 감추면서 글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알고는 있지만 잘 고쳐지지는 않는다.
아니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싶다. 내 모습 그대로 표현하고 싶을 따름이다.
글쓰기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