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퇴사를 고민하는 딸에게

항상 든든한 응원군이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해다오

by 엄재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나와 딸들의 재택근무가 길어진다.

덕분에 가족이 함께 할 시간이 많다.

며칠 전, 큰 딸은 일이 있어 먼저 나가고 둘째 딸과 오랜만에 집에서 점심을 했다.

둘째 딸도 교육기관에 행정직원으로 있기 때문에 이번 학기를 계속 집에서 근무하고 가끔 학교에 긴급한 회의가 있으면 출근하곤 했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안정된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던 터였다.


딸은 지난달부터 매주 토요일 쿠키와 케이크를 만드는 학원에 다니고 있다.

여유시간에 취미생활로 다니는 것으로 알았다.

“요즘 쿠키 굽는 재미가 어떠냐~?”라고 물었다.

“즐거워요~” 하고 바로 대답을 한다.

“직장생활도 괜찮지? “라는 질문에 갑자기 응답이 없다.

그리고는 한참을 뜸을 들이면서 말을 이어 나간다.


“사실 힘들다고..”

“학부모와 상담하고 번역하고 통역하는 일에 보람도 없고, 특히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학부모와 외국인 교사 간에 중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라고 한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답이다.


나는 “직장생활이 쉬운 게 어디 있냐고 다 힘들면서도 버티면서 살아내는 것”아니냐고 했다.

딸은 자기가 겪은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 하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예전에 겪은 직장에서의 갈등을 털어놓았다. 나 역시 결국은 퇴사를 하고 전직을 하였지만 그 어려웠던 순간을 참을 수 없어 옮겼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아빠가 버티라면 2년까지는 더 있겠다고~” 고 자신의 결심을 전한다.

그리고는 지금 하고 있는 제과를 열심히 하여 이쪽으로 진로를 변경하겠다고 한다.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감수하겠다”는 결의까지 보인다.

“그래, 일단 직장도 제과도 같이 하면서 생각이 바뀌질 수도 있으니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하면서 한낮의 긴 점심시간을 마무리하였다.


그동안 브런치나 책을 통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등의 글을 많이 보아왔다.


그때는 ‘그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잘했어..!’라고 속으로 응원을 보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같은 상황인데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돌이켜본다.

딸이 교육기관에 지원을 하고 면접까지 마치고 합격통지를 기다리던 그 순간이 머리에 떠 오른다. 3년 전 쓴 글이 있어 다시 보았다.


오전에 서재에서 중간고사 온라인 강의 채점을 하면서 지난주 면접을 끝낸 딸의 합격 결과를 손꼽아 심란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에서 딸이 강아지와 노는 소리가 들리다가 갑자기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희미하지만 엄마에게 하는 소리인 것 같은데 "떨어졌어요.."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순간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가 띵하다. 경쟁자에게 그 자리가 갔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낭패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떡하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우선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난감하다.


일단 조심스레 거실로 나가 보니 딸은 강아지 재롱이 와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너무 민감하게 거실 소리에 반응하여 추측하였던 것이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따르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거실로 다시 가서 딸에게 "만에 하나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라고 강조한다.

아내와 나는 '만에 하나..!'를 더욱 강조했다.

....

합격 소식을 기다리다 오후에는 스포츠센터로 가면서 소식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다. 운동을 하고 파우더실에서 몸을 말리고 라커로 가면서 이제는 문자가 왔겠지 하고 핸드폰을 열었다.


아직도 무소식.

다음 날 오전까지 학교에서 계속 집으로부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오후에 강의가 있어 수업이 끝날 즈음에 핸드폰에 카톡의 새로운 메시지 화면이 살짝 보인다. 화면을 보니 "러브 이모티콘"이 핸드폰 가득히 있다.


‘아, 드디어 합격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아내와 그동안 마음 조리는 순간을 함께 돌이키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인데.

누구나 선호하는 직업인데.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든다.


남의 아들딸들이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프리랜서로 갈 때는 박수를 보냈는데 내 마음이 왜 이리 착잡할까?. 혹시나 딸이 지금 조금 어렵다고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길을 찾는지는 아닌지도 염려가 된다. 이 험한 세상에서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면 막 부딪치게 될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다.


“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라는 딸의 말에 안심이 된다.

평소 나의 판단 기준으로는 ‘본인이 결정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심란해지는지 알 수 없다.


친구와 차를 타고 함께 어딜 가면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모든 고민거리는 정작 일어나지도 않을뿐더러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해결책이 반드시 있다고”. 맞는 말이고 위로는 되지만 가슴으로 온전히 와 닿지는 않는다.


다시 냉정하게 생각한다.

나는 딸의 의견을 존중하다.

나의 자랑스러운 딸이 무슨 일을 하던지 그곳에서 어려울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생의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그 외의 것은 모두 군더더기다.

그 길을 나의 딸이 조금씩 찾아가길 바란다.


네 뒤에 항상 든든한 응원군이 있다는 사실을.

엄마, 아빠와 언니가 뒤에서 늘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라면서.

사랑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판단을 잠시 중단하는 ‘에포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