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
아주 작은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
오래전, 운동을 하기 전에는 허리나 관절에 통증이 있으면 정형외과나 한의원으로 달려갔다.
주사를 맞거나 도수치료를 받으면 곧 통증은 가라앉는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또 약간 무리를 하면 통증이 도진다. 의사가 알아서 해 주겠거니 생각하고 그때마다 내 몸을 맡겼다. 나는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통증이 반복되니 회복이 더디었다. 통증이 계속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정신도 약해지면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내 몸을 의사에게 '외주'를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의사가 진료도 하기 전에 실손보험 여부를 물으면 돈독이 오른 보험사 영업맨처럼 보인다.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내 몸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찾아야 했다.
그 해법이 '운동 습관과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습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루의 일상도 결국은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그 후로는 습관으로 고정된다. 물론 타고나면서 유전자 영향을 받지만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습관으로 형성된다.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관찰해보라. 사람마다 표정이 다 다르다.
자신의 얼굴 생김새도 부모로부터 유전으로 받았지만 얼굴 표정은 살아오면서 자신이 선택한 결과이다. 그래서 '나이 마흔 이후의 얼굴은 본인 책임'이라고 한다. 얼굴뿐만 아니라 인생 그 자체도 작은 선택들의 결과다.
학창 시절에서 공부를 대하는 태도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경력을 쌓아나갈 것인지도 자신의 태도와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습관이 되고 오늘의 내가 된다. 선택을 하고 습관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쁜 습관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본인이 찾아야 한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가? 운명이 나와는 등을 돌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가? 상사를 비난하고 환경과 운명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선적으로 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밖으로 나가서 걸어라. 그리고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니 어려울 때만 그러한 시간을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꼭 집이나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출근하면서 그 공간과 시간을 갖는다. 자동차로 약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무슨 사례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까’라는 그날의 학습내용에 대해 궁리한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는 주로 음악을 듣거나, 미리 유튜브 영상을 다운로드한 것을 듣는다.
주로 <세바시>나 TED 강연이 아니면 다큐멘터리 혹은 최근 경제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을 듣는다. <최경영의 경제쇼>, 정치적인 것은 <시사자키 정관용>등도 듣는다. 아주 가끔은 차 안에서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다소 거창한 질문도 한다. 운전만 거칠게 하지 않으면 누구로부터도 방해를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정신을 맑게 하는 습관이다.
오래전부터 시간이 되면 산책을 하였으나 습관이 되지는 않았다. 날씨가 아주 좋을 때 기분에 나면 공원으로 걸으러 갔다. 우연한 기회로 ‘걷기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난 후로부터 거의 매일 걸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습관을 들였다. 몸 상태는 정신 건강과 항상 함께 간다.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대면 강의를 한다.
산책을 하면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다. 주위 산과 숲길과 개울이 모두 ‘나만의 공간’이다. 누가 방해를 하지 않는다. 숲길을 걸을 때는 호흡을 느끼면서 명상을 한다. 매일 산책하는 길이지만 계절마다 변화하는 호수공원의 경치와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을 감상한다.
어느 날부터 그냥 ‘들에 핀 꽃’이 아니라 이름을 알고 싶어 졌다.
박완서의 소설에서는 유독 꽃이 많이 나온다. <아주 오래된 농담>에 능소화가 나온다.
“그 꽃은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쨍쨍한 여름날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괜히 슬퍼지려고 했다. 처음 느껴본 어렴풋한 허무의 예감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아름다움의 극치에서 허무도 동시에 보았다.
능소화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말뜻을 갖고 있다. 여름 뙤약볕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
주 도도하게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운다. 중국이 원산지다. 능소화의 꽃 모양이 마치 트럼펫을 닮았다 하여 ‘차이니스 트럼펫 크리퍼’라 부른다. 덩굴식물이라 어디든지 타고 올라간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이 나무를 좋아해서 ‘양반꽃’으로 불린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이 있으면 찾아본다. <다음> 검색엔진을 사용하여 “꽃 검색”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김영하 작가에 의하면 박완서가 “글을 쓰는 사람은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고 했다고 한다. 꽃도 마찬가지다. 꽃의 이름을 모를 때는 그냥 들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이다. 이름을 모르면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파트를 지나가다 어느 경비실 앞에 놓인 빨간색 꽃이 너무 예뻤다. 자주 본 꽃인데.. 검색을 하니 백일홍이었다. 꽃이 백일 동안 붉게 핀다고 '백일홍'이라고 한다. 내 주위에 늘 있었지만 무관심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능소화와 백일홍은 그렇게 나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꽃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하니 더 즐거워졌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란 시의 접시꽃도 처음 확인했다. 아내와 산책하면서 물어보니 ‘접시꽃’이라고 한다.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는 마음으로 쓴 꽃이어서 아주 가냘픈 꽃이라 예상했다. 근데 꽃도 크고 꽃대도 크고 하여 그리 눈길이 잘 가지 않은 꽃이었다. 아내는 시인이 그렇게 애틋하게 시를 쓰고는 곧바로 재혼했다고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덕분에 <접시꽃 당신> 시를 다시 읽는다.
(....)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그렇게 접시꽃도 내 품에 들어왔다.
정서적으로 풍성함을 느낀다. 산책을 하면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러면 느리게 걷거나 잠깐 멈추어 스마트폰 메모 앱에 적는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 생각을 놓친다. 그렇게 걷다가 경사도가 낮은 산에도 잠시 올라간다. 정상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특히 9월에서 10월의 아침 태양은 산 정상의 쉼터에 바로 비춘다. 잠시 눈을 감으면서 비타민 D와 함께 태양의 기운을 흠뻑 받는다. 정신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그곳도 나만의 공간이다.
나무와 꽃이 태양의 빛으로 광합성을 하여 생명을 꽃피우듯 나도 태양 에너지를 몸 곳곳에 담는다. 그리고는 셀카 비디오를 찍는다. 오늘 할 일과 그 순간의 감상을 혼잣말로 녹화한다. 처음에는 내가 녹화를 하면서도 낯설었다. 이제는 익숙하게 나의 감정을 표현한다.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나의 감정 상태를 객관화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도 야구선수로 활동하다가 사고를 당하면서 시련을 겪고 매일 1퍼센트씩 성장하는 삶을 살았다고 증언했다. 나 역시 두통으로 산책을 시작했는데 효과를 보았다. 산책이라는 아주 작은 습관을 들이면서 그 후로 많은 것을 덤으로 얻었다.
나는 그 책을 보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습관이 되고 난 후, 나중에 책을 읽으니 내가 습관을 들였던 과정과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요가 매트를 깐다. 요가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스트레칭과 함께 브릿지와 푸시업도 시작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5~10개 정도를 했다. 전혀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습관이 들으니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에서 매일 봄여름에는 매트, 가을 겨울에는 담요부터 먼저 깐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스트레칭을 하게 된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유튜브를 보면서 가벼운 크런치와 골반운동, 발 들어 올리기를 한다. 그런 후 엎드리면서 덩키 킥과 플랭크를 한다. 마지막으로 푸시업을 천천히 50~70회 하고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한다. 대략 15~20분 정도 걸린다.
아침에 스트레칭으로 시작하여 산책을 하면서 하루를 활기차게 연다. 샤워를 하고 나면 몸이 아주 가볍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글을 쓰다 보니 책도 많이 보게 되었다. 아내가 만든 요구르트와 과일 그리고 호두 등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아주 천천히 먹는다.
그리고는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는다.
책상에 일단 앉으면 저절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게 된다. 작은 습관이 들었다. 일종의 루틴이 되었다. 마치 아침에 매트를 깔기만 하면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는 새벽에 일찍 깨면 다시 잠을 들지 못했다. 이제는 그 불면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한다.
나는 ‘글을 쓰면 인생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글은 나에게 방향을 가리켜주는 GPS 역할을 한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 방향으로 가도록 행동하게 하는 에너지까지 얻는다. 가로 늦게 ‘산책’이라는 작은 습관을 들이 고난 다음부터 삶의 이정표를 찾을 수 있었다.
‘산책’이라는 작은 습관을 들이고 난 후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산책'이라고 해서 마냥 설렁설렁 걸어서는 운동 효과가 없다. 걸으면서 어느 순간에는 옆사람과 대화하기가 약간 불편할 정도의 강도로 걸어야 한다. 3년이 넘어가면서는 '자동모드'로 바뀌었다. 비싼 멤버십 비용을 내면서 헬스클럽도 오래 다녔고 PT(개인 트레이닝)도 배웠지만 가성비가 가장 좋은 것이 매일 걷는 것이다.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심지어 자연을 즐기면서 정서적으로도 고양이 된다. 현재 코로나 사태에서는 더욱 권장하고 싶다.
더 이상 내 몸을 의사에게 '아웃소싱' 주지 말자.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했는가? 추석연휴로 인해 오히려 가정에 갈등이 있는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나가서 걸어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매일 걷기를 시작하면 좋겠다. 나이가 더 들기 전, 마흔 이전에 시작하면 더욱 좋겠다. 아주 작은 습관이지만 그 효과는 대단하다.
그 효과는 내가 보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