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말로는 쉽다. 듣기는 좋지만 몸으로 실천하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면 지혜롭게 행동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더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강퍅해진다. 지난 3년간은 몸을 움직이면서 내 삶의 양식을 바꾸는 실험을 했다.
동내 뒷산을 오르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이 즐겁다. 그 힘든 순간이 이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다. 나의 심장과 폐가 헐떡거리면서 펌프질을 할 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이 세포 호흡을 통해 왕성하게 생명활동을 하는 그 순간의 나를 지켜본다. 호숫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들숨과 날숨을 내 쉴 때면 나는 그동안 억눌러 있던 나의 욕망을 본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욕구, 소유에 대한 끝없는 욕망,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 들을 지켜본다. 그 욕망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욕망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구태여 욕망을 떨쳐 버리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그게 나 구나’라고 혼자 '쯧쯧’하면서 그냥 인정할 따름이다. 어느새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생겼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8개월째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타인의 행동과 그 장단점이 유독 눈에 잘 들어온다. 타인과 거리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심리적 거리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나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조금 높은 시선에서 돌아보면 나의 감정까지도 객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을 움직이면서 걷고 근력운동을 하면서 내 몸의 변화를 보고 난 후, 마음까지도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외롭고 마음이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이면, 바로 밖으로 나가서 몸을 움직이면 다시 정신이 맑아지면서 마음이 회복된다. 인간의 정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약하고 자기 합리화를 잘하고 육신의 지배를 받는다. 육체가 정신을 이끌어가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삶에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타인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무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공감이 필요한 경우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기보다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가족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사랑하고 공동체에서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책상에 앉아서 혹은 소파에 뒹굴거리며 누워서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3년 전부터 꾸준히 산을 오르거나 산책을 하면서, 오로지 몸을 움직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걸으면서 뭔가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도 넘쳐났다.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책을 읽고 산책하고 글 쓰면서 살아가는 이 순간에 충만함을 느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가끔은 혼자 '끙'거리면서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새삼 의식 밑에 있는 기억이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경험도 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아픈 기억까지도 함께 올라와서 당황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글을 써 나가면서 나의 기억과 생각이 정리가 된다는 느낌은 든다. 책상에 앉아 본격적으로 글 쓰는 습관을 시작한 지는 일 년이 지났다.
글 쓰는 시간이 즐거웠다.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기억을 더듬는 그 순간이 좋았다.
만보 걷기를 하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호기심이 생겨나고,
그 생각과 호기심을 메모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호기심은 책을 읽으면서 혹은 실제로 배우면서 계속 생겨난다. 어느 날, 느닷없이 거울을 보면서 여태 보이지 않았던 나의 배불뚝이 육신이 뚜렷하게 보였다. 아침 홈트레이닝과 글쓰기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 루틴이 습관화되면서 새벽에 자주 깨던 잠버릇을 고쳤다. 매일 걷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까지 평안해진다. 몸과 마음이 가벼우니 식사 시간도 즐겁다. 천천히 먹는 습관까지 생겼다.
3년 전에 시작한 작은 습관 하나가 나의 삶 전체를 변화시켰다.
내가 선택한 그 순간을 온전히 즐겼다.
이 변화를 혼자 간직하기에는 아깝다.
<Photo by John Jenning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