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생명의 역동성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학교에 갈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
당연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우울해지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역시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한결 가볍고 상쾌하다. 최근까지도 매일 만보 걷기를 계속하면서 한결 몸 상태가 좋아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날은 올해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걷고 난 후에 땀으로 축축해진 몸으로 샤워하고 났을 때, 몸과 머리가 가벼워지는 자연이 주는 그 상쾌한 보상을 알기에 추위에도 망설이지 않고 방한복과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중무장하여 나갔다. 동네 뒷산에서 스트레칭까지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고관절 부위에 통증이 왔다. 느닷없는 통증이었다. 너무 건강을 자신했나?
걸음을 약간 절룩거리면서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다음 날에도 가만히 있으면 괜찮지만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하면 통증이 재발하여 결국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와 MRI를 찍고 의사가 판독하기를 뼈에는 이상이 없고 증상으로 보아 관절에 염증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 너무 과하게 운동을 하면 가끔 관절에 무리가 와서 통증을 유발한다고 진단한다. 1시간 이상 하는 것을 30분으로 줄이라고 권한다.
글쎄?
30분으로는 전혀 운동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최소 45분 이상을 걷고 산행을 해야 서서히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몸이 더워지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0분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쨌거나 조심해야겠다. 내 머리로는 무리를 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내 몸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아진다. 기분이 좋아 조금 무리하여 술을 마시거나 늦은 시간까지 책을 보거나 일을 한 다음 날은 예전과 달리 현저히 몸 컨디션이 떨어진다. 몸과 마음의 적절한 튜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항상 불운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다.
골프채를 들고 아파트 현관의 계단을 내려가다가 헛디뎌 왼쪽 발을 접질렸다. 그날도 추운 날씨에도 무리하여 운동을 나갔다. 다음 날 아침, 발목에 붓기가 있어 엉덩이 통증도 치료할 겸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부황과 침으로 치료한 후 의사와는 다른 처방을 내린다. 평소대로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환자 중에 암 치료를 받고도 회복이 빠른 사람은 거의 평소에 근력과 전신운동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정형외과 의사의 처방이 잘못되었으니 자신의 말대로 땀이 날 정도로 걷고 필히 근력운동도 함께 하라고 한다. 다만 추운 날만 조심하면 된다고 권유한다. 한의사의 처방이 의사보다 오히려 합리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은 막을 수는 없다. 치명적인 통증은 행복한 삶과는 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초기에 몸이 이상 증세를 보일 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다. 운동을 하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가끔은 앉는 자세를 스스로 관찰하여 허리를 곧추 세운다. 걸을 때도 몸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왜 몸은 마음과 다르게 반응할까?라는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
인간의 생명은 개별적이지만 모든 생명의 근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몸으로 느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로 하여 전염하듯이 인간의 감정도 서로 연결되어 행복과 우울감마저 전염시킨다. 심지어 미국처럼 비만도 전염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 사회라는 큰 집단의 시선으로 보면 개개인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플 수 있다는 말이다.
조금 더 미세한 수준인 세포 단위로 내려가 본다. 세포의 시선으로 우리 몸을 인식한다면 몸은 하나의 소우주와 같을 것이다. 내 몸이 소우주라는 인식과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우주의 역사적 흔적 속에 진화되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우주의 진화 속에서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철학이나 생물학에 관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저자가 슈뢰딩거였다.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양자 물리학자가 생명에 관해 철학과 생물학을 넘나드는 책을 썼다.
슈뢰딩거의 끊임없는 탐구정신으로 던진 이 질문으로 인해 프랜시스 크릭 물리학자가 생물학자인 제임스 왓슨과 함께 연구하여 DNA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밝혀내 1953년 '네이처'에 논문을 실었다. 1962년에는 모리스 윌킨스 물리학자와 함께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학문에서 '탐구와 융합의 정신'의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얘기하는 융합학문을 최초로 시도한 사례이다. 이왕에 생명현상의 본질을 알기 위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분자생물학 책까지 뒤져 본다. 내가 평생을 먹고 호흡하고 배설하면서 살아가는 나의 육체 속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원리를 알고 싶었다.
분자생물학에서 발견한 생명현상은 'DNA 복제 시스템과 동적 평형'이론이다. DNA 복제 현상은 많이 들었지만 동적 평형은 다소 생소하다. 생명의 동적인 평형상태를 처음으로 발견한 학자는 독일의 생리학자 루돌프 쇤하이머이다. 그는 "유기체의 생체분자는 합성과 분해의 흐름 속에서 생명체 내부를 흐르고 평형을 이루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쉽고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과연 ‘무슨 소리를 하는가’ 의아하다.
생명활동의'역동성'을 얘기한다.
현대의학에서 인간의 생명현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쇤하이머의 실험 결과는 몸의 모든 유기체는 끊임없이 교체된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이 변화가 생명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다. 생명은 영속성을 위한 ‘자기 복제’와 함께 '역동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태를 유지한다. 예를 들어 대사증후군이 있다는 진단은 유기체의 교체가 원활하지 않아 생명의 ‘역동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이 역동성이 생명력의 근원이다.
생명력의 근원은 역동성이고 그 역동성은 근원은 변화한다는 뜻이다. 손상된 뇌세포는 재생되지는 않지만 재활을 통해 다른 주위의 '뉴런 세포'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신경망을 가동하여 죽은 뇌세포를 대신하여 기능하는 사례도 '생명의 역동성'을 설명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
인체의 에너지 원천인 백혈구 세포의 수명은 4일에서 2주일, 적혈구는 약 120일, 피부 세포는 약 28일 만에 죽고 다시 생성된다. 정자세포는 100일, 임신을 위해 100일 기도를 하는 이유이다. 두피세포는 2개월, 위, 췌장, 간, 혈관을 포함한 장기세포는 4개월, 심지어 뼈, 근육세포도 7개월이면 재생이 된다. 손톱, 발톱의 경우도 뿌리 부분에서 손톱 끝까지 성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이다. 세포단위에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몸을 유지한다.
세포 수명을 고려하면 현재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도 6~7개월간 건강관리를 잘하면 몸 전체의 세포가 새롭게 바뀌면서 우리 몸이 새로이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헬스클럽이나 야외에서 운동을 통해 근력을 강화하고 체중조절을 하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쉽지는 않지만 운동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운동 습관은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과 음식물이 체내 세포 내 분자 활동으로 미토콘드리아에서 합성 작용을 통해 포도당을 에너지로 생성하는 대사활동을 한다. 몸속의 모든 세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명 현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체내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의 순환속에서 생명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현상의 근본 원리이다.
우리 몸속의 세포단위에서는 이 순간에도 생명의 역동성을 위해 세포의 생성과 소멸 현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한 달이 지나 소멸되는 피부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세포는 죽지만 몸 전체로 볼 때는 새로운 피부 세포가 탄생하면서 생명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인간도 그렇지 않을까?
개별 인간은 결국 죽음을 통해 사라지지만 유전자의 복제를 통해 그 생명의 근원을 계속 이어간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나의 육체와 정신은 사라지지만 생명의 근원은 계속 영속된다. 그 생명의 근원이 <인간 현상>에서 샤르댕이 주장하는 ‘오메가 포인트’가 될지는 모르지만 유전자의 복제와 역동성을 통해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가면서 영속성을 유지한다.
나의 육체는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다르다. 계속 변하는 유기체이나 결국은 소멸할 것이다.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세포는 나에게 '제발 몸을 과하게 부리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하라'라고 간청한다. 이것들은 세포에게 부담을 주어 생명의 역동성을 해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원형질이 최초에 생성하면서 수억 년의 세월을 거쳐 무기물과 유기물, 식물과 동물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진화했다. 호모 사피언스가 출현하기까지 생명체는 어느 하나 동떨어져 진화하지 않고 유기물질 분자 단위의 상호작용과 변형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선택된 유전자의 총합체이다.
분자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내 몸에 33억 년 생명진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유이다. 나의 몸에 33억 년의 생명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생명체의 변화에 대한 역동성을 알면서 나의 정신도 함께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육체도 쉼 없이 움직임으로써 역동성을 유지하듯이 정신도 늘 자극을 주어 변해야 한다. 매일 다람쥐 체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따분함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쏟아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 대상은 서예, 그림 그리기, 책읽기, 글쓰기, 악기 연주, 꽃가꾸기, 쿠키 만들기 등 다양하게 많다.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노년이 시작된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말이다.
‘노년이 시작된다.’는 뜻은 의미 없는 삶이 시작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노년이라도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가질 수만 있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감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겨울에도 따스한 양지바른 곳에서 파랗게 피어난 꽃을 보고 감동하는 삶이 아닐까?
‘관심과 의미가 사라진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