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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몸과 마음을 함께 챙길 시간

연금보다 걷기가 먼저다

by 엄재균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이 비과세가 되어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처음 출시될 때부터 넣기 시작했다. 세금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누구가 다 알기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가입했다. 은퇴 후 노후를 위해 미리 저축하여 미래를 대비한다. 근데 운동이 몸에 좋다는 사실도 세상 사람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자주 걷는 것은 더 좋다. 그러나 우리들 꾸준히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후를 위해 연금은 붓지만 미래에 가장 중요한 운동은 미리 준비하지 못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그럴까?


“자주 걸으세요..”


권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든지 혹은 “걸을 여유도 있고, 당신은 좋으시겠어요..”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운동은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하면 좋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새해 결심을 한 후 헬스장에 등록도 하고 열심히 나간다. 1개월, 2개월 시간이 지나면서 하지 못할 이유가 오만 가지도 넘는다. 약속이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몸이 아파서 등등의 이유로 가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1년 회비가 아까워 겨우 나간다.


결국 삶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습관을 들이지 못해 3개월 길어야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둔다.


운동을 하면 몸에 좋은 줄은 알지만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운동이 건강에 좋은 것은 머리로는 아는데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몸으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타는 의지로는 어렵다. 오래가지 못하고 식어 버린다. 지식으로 아는 것에서 출발하여 경험을 통해 몸으로 그 즐거움과 효과를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강남 대치동으로 이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즐겁게 읽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즐겁게”라는 곳에 방점이 찍힌다. 아이들이 직접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체험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모가 행동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들 보라고 부모가 싫은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책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가 먼저 즐겁게 책을 읽어야 한다. 아이들은 귀신 같이 안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운동을 하면 좋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헬스클럽에 가서 트레드밀 위에서 걸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따분함을 줄이기 위해 코 앞에 있는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걸었다.


운동의 즐거움을 몸으로 터득하지 못했다.


재미가 없으니 핑계를 대면서 운동을 게을리하고 헬스클럽 가서도 사우나만 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20년 이상을 다녀서 출근 습관은 들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즐겁지가 않으니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습관을 들일 수 있는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몸으로 느껴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걷는다”.




몇 년 전이었다.


그날은 겨울 방학기간이라 평소보다 느긋하게 학교 연구실에 가서 책을 보았다. 책상 위에 있는 스탠드 전등의 갓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것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도 스탠드 갓이 기운 걸 보았지만 오늘따라 느닷없이 마음에 거슬린다. 몸체와 결합하는 갓의 나사 암수가 잘 맞지 않아서 이전에도 고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늘은 왠지 꼭 고치겠다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궁리를 한 끝에 드디어 제대로 수평을 맞추어 끼웠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의자에 앉아서 성취감을 맛보려고 엉덩이를 의자에 내딛는 찰나였다. 아주 순간이지만

'엉덩이가 허공에 붕 떠있는 느낌'

이었다가 바로 바닥으로 '쿵!'하고 내 동댕이쳤다. 바닥이 미끄러워 의자가 뒤로 밀려 나간 줄 모르고 그냥 앉으려다 변을 당했다.


그 순간 엉덩이가 사무실 바닥에 정면으로 부딪혀 꼬리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뭔가 '우리한' 통증이 있었다. 견딜 만했다.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이라 비명소리만 내고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의자를 바로 하고 앉았다. 특별히 꼬리뼈에 통증도 없어 속으로 '그나마 다행이다' 하고 지나갔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세수를 하려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칫솔질을 하는 데 갑자기 머리가 '띵'한 통증이 느껴진다.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조여 오는 느낌이 들면서 통증이 더 심해진다. 검색을 하니 뇌진탕일지도 모르니 전문의에게 상담하라는 권고가 있다.


오후에는 더 이상 두통을 참기 어려워 집 근처 신경외과에 갔다. 의사에게 증세를 얘기하니 뇌 혈류 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결과는 이상 없다. 의사는 심각한 정도의 뇌진탕은 아닌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도(?) 있으니 일단 기다리며 지켜보자고 한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는 뜻을 에둘러 얘기한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는데 두통이 다시 온다. 누워 있을 때는 괜찮다. 어떤 통증이던 다 견디기 어렵겠지만 이 두통은 헬멧을 머리에 씌우고 꽉 조여 오는 그런 통증이다. 군대에서 내 머리보다 작은 크기의 헬멧을 억지로 끼우면서 느낀 두통보다 몇십 대 더 아팠다. 두통으로 몸이 힘들어지니 기분까지 우울해졌다.


집 근처 탄천을 걸었다.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속도를 내어 빠르게 걷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두통이 사라진다.


'이 무슨 오묘한 현상이지?"


다음날부터는 두통이 시작되면 밖으로 나가 걸었다. 천천히 걸으면 효과가 떨어진다. 빠르게 걸으면 어느 순간 두통이 없어진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두통이 시작된다. 한 달이 지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생기는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했던 유태우 박사의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뇌에서 통증 회로를 만들어 만성으로 넘어간다"는 얘기를 유튜브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통증은 부정적인 감정의 신경회로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두면 만성 두통이 된다는 것이다. 문득 이런 두통을 평생 달고 어떻게 살지 걱정이 덜컥 생긴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나도 기분이 우울해진다. 만성 통증은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상 우울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면서 우울증으로 발전한다고 들었다. 나 자신도 날이 갈수록 일에 집중할 수도 없고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졌다. 통증은 그 원인을 빨리 찾아서 해결하든지 아니면 진통제를 사용하여 통증의 만성화를 방지해야 한다. 당시 내가 쓴 일기를 찾아보니 그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너무나 끔찍한 통증이라 오래 가면 어쩌나 두렵다.


머리가 꽉 조여 오는 느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글귀가 '순간 일기' 앱에 보인다. 아내에게 얘기해도 공감하는 듯 하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표정이다. 당연하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다. 같은 통증으로 아프지 않으면 결코 그 고통까지를 공감할 수 없다. 두통이 올 때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하면 통증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터득했다. 그 후로는 두통이 올 때면 자주 밖으로 나가 걸었다.


산책길_05.JPG 산책길 벤치에 앉아서 본 데칼코마니 호수


사실 걷기는 가장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아기를 키우면서 처음엔 누워있다가 몸을 되돌리고, 엎드려 고개를 드는 순간이 있다. 그리곤 한참을 기어 다니다가 어느 순간 탁자에 손을 얹고 일어설 때 부모들은 모두 탄성을 지으며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 모습에서 인류 진화 과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직립보행은 호모 사피엔스가 200만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특성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유전자 속에 각인이 되어 있다. 원시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네 발 중에 두 발이 손이 되어 자유로울 수가 있어 뇌의 질량과 능력이 폭발적으로 발달되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행복에 관한 놀라운 과학』의 저자인 댄 힐버트 박사의 얘기이다. 직립보행을 한 후, 인간은 불을 다룰 수 있고 도구를 사용하고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뇌의 능력이 점차 확대되었다.


그렇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인류는 전전두엽의 발달로 지능면에서 어느 포식자도 넘볼 수 없는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현대 사회에 와서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걷지 않아도 이동이 가능해져서 온갖 성인병과 만성 질병의 원인이 되었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인류의 유전자에 심긴 ‘일상의 걷는 행위’가 바뀌었다.


불과 100년 전 자동차의 대중화로 '걷는 행위'가 이제는 별도로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할 ‘운동’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유전자에 있는 '직립보행'에 대한 본능을 의식적으로 되살려야 한다. 인간은 걷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걸으면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증가한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조절하고 기억력과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이다.


아침마다 빠른 속도로 걷고 가벼운 산행을 함께 한다. 한 달 보름이 지나는 어느 아침, 걷는 도중에 통증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줄어들자 나의 부정적인 감정도 함께 사라졌다.


오래 동안 약간 빠른 속도로 계속 걷으면, 어느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나의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맛볼 수 있다. 그 순간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짊어갈 만성 통증으로 가는 지옥의 길목에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걸은 후 효과가 바로 나타나니까 걷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나는 부작용 걱정 없는 걷기를 선택하는 편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추워지면 외투를 입는 것처럼 나는 기분에 문제가 생기면 가볍게 걸어본다. (중략) 만약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서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면 그저 나가서 슬슬 걸어보자. 골백번 생각하며 고민의 무게를 늘리고 나쁜 기분의 밀도를 높이는 대신에 그냥 나가서 삼십 분이라도 걷고 들어오는 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 모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배우 하정우가 『걷는 사람 하정우』책에 담은 경험이다. 나와 같은 생각이다.


왜 하정우와 내가 같은 경험을 했는지 그 이유를 의학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한 책이 있다. 30년 동안 두뇌발달 원칙을 연구하고 강의한 마이크 케브의 저서 『뇌를 젊게 하는 8가지 습관』이다. 저자는 “유산소 운동 중에 걷기를 통해 깊고 빠른 호흡을 하게 되면 혈류 속 산소 용존량을 증가하여 뇌세포를 포함한 심장, 폐, 혈관 증에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해준다”라고 강조한다. 뇌는 체내 산소 중 20퍼센트 이상을 소비하기 때문에 유산소 운동이 뇌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듀크대학 의료센터의 제임스 A. 블루멘탈 박사도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유산소 운동을 한 사람들의 기억력 테스트를 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유산소 운동은 중년기와 노년기에 겪는 우울증을 완화시키고 사고력과 기억력을 발달시켜 노화로 인한 뇌 기능의 쇠퇴를 방지한다"라고 말한다. 유산소 운동 중에 빨리 걷기를 제일 먼저 추천하였다. 왜냐하면 특별한 도구도 필요 없이 언제든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몸에 크게 무리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하!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고 두통도 사라졌구나.


현대의학은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사들이 하나 같이 운동은 우리 뇌와 정신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개 운동을 시작하는 큰 계기는 건강과 다이어트 때문입니다. 그러나 몸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어서 운동을 시작한 이들 또한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아픔을 겪고, 무언가 뜻하던 일이 되지 않고, 죽을 것 같은 공황 발작이 일어나고, 자신에게 환멸이 느껴지거나 우울한 기분이 휩싸이는 등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면 운동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운동을 통해 자기와 세상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기쁨과 용기, 행복 더 나아가 희열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느낌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이들도 있습니다.


분명 운동은 신체적 단련 이상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 운동이 자존감과 같은 자아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칩니다” 『이제 몸을 챙깁니다』의 저자 정신과 의사 문요한이 강조한다. 나에게 하는 소리 같다. 차고 넘치는 연구결과의 실질적인 효과를 몸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통증을 사라지게 하고 기분도 전환이 되는 걷기의 묘미를 알고부터 매일 걷는다. 평일에도 시간이 나는 대로 걷는다. 휴일 아침에는 산행을 간단하게 한 후 호숫가를 걷는다. 아침 산책길에서 본 장미꽃과 호수가 아름답다. 걷고 가벼운 산행을 함께 하고 나면 몸이 상쾌하고 걸으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의 저자이자 신경과 전문의인 딘 세르자이와 아예 사 세르자이 부부는 15년간 연구와 임상 시험 끝에 알츠하이머를 90퍼센트 예방하고 10퍼센트는 되돌릴 수 있는 길을 알아냈다.


"치매는 유전과 노화로 인한 불치병이 아니라 잘못된 생활습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삶의 방식을 개선하면 두뇌건강은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 및 수면 습관이다.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특히 유산소 운동이 뇌 건강에 가장 좋다고 강조한다.


은퇴 후 노후를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연금저축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 치매까지 예방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늙어서 치매를 앓으면서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100세를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처럼 100세에도 글 쓰고 강연을 다니는 모습이 부럽다.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라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희망을 갖는다.


이제는 인생 2 모작 3 모작을 준비해야 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가 코 앞에 왔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그 생각 속에 나 자신이 충만해짐을 느낀다. 걷고 난 후는 일에 대한 능률까지 오른다. 게다가 뇌기능까지 활성화되어 은퇴 후에도 치매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니 이런 보험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공짜로. 지금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활기차게 걷자. 걸으면서 또 하나 덤으로 얻었는 것이 있다. 아니 덤이 아니라 더 소중한 자산을 얻었다.

글 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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