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두 번째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언제 처음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까?
40대, 중년 즈음이 아닐까? 책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자꾸 멀리 보는 버릇이 있을 때다. 옆에 있던 친구가 느닷없이 내가 보던 신문을 내 앞으로 당긴다. 그리고는 어떠냐고 묻는다. 갑자기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전장에서 이탈했던 전우를 만난 듯 기뻐하면서 “너도 노안이 왔네~”라고 활짝 웃었다. 동병상련이란 이런 것인가? 늙어가는 것을 부정하려고 해도 내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하니 갑자기 슬퍼졌다. ‘나도 어느새?’라는 탄식과 함께 늙음은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난 그때 처음으로 내가 늙어간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눈의 노화가 가장 빠르게 시작된다고 한다. 중년의 시간으로 깊게 접어들면서 머리에 서리가 앉은 듯 차츰 하얗게 세어가고, 몸에도 호르몬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몸의 변화에 적응하다가 육십이 가까워 오면서 늘어나는 검버섯과 얼굴 주름을 보면서 한번 더 마음이 움츠려 들었다.
몸 곳곳에서 나를 봐 달라고 아우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무릎관절에서부터 시작하여 허리와 어깨에 이르기까지 요동을 친다. 기억력까지 떨어지면서 '이게 혹시 치매의 전조 증세는 아닐까'하고 불안해할 때도 있다. 잠까지 설치는 날에는 '혹 불면증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예방주사를 우선적으로 접종하라는 권고를 받고 잠시 슬퍼진다. 누구는 65세가 되면 전철도 공짜로 타서 춘천과 천안까지 갈 수 신나서 떠드는데, 왠지 난 슬프다. 어느 날 동네 어린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날 보면서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상상만 해도 싫다.
만약 내 손주가 부른다면 느낌이 전혀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위로하지만 현실에서는 자꾸 외면하려고 한다. 환갑이 지나는 해에도 굳이 두 번째 서른을 넘긴다고 하면서 환갑이란 단어조차 외면했다. 육십갑자만 떨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했다. 뭐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느 순간 ‘늙어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이하자’라고 생각했다. 예전보다 몸을 더 깨끗하게 하고, 더 깔끔하게 옷을 입고, 중력때문에 갈수록 처지는 입꼬리는 웃는 모습을 하면서 모든 것에 호기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여행 중, 로테르담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아침 먹은 지 오래되지 않아 간단하게 요기를 할 작정으로 타파스를 파는 식당으로 정했다. 토요일 오후라 이미 예약이 찼고 바깥 구석에 한 테이블이 비어있어 안내를 받아 앉았다. 와인 한잔을 시켜 목을 축이는데 예약된 옆 테이블에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부부 4쌍이 차례로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에 본 건지는 모르지만 서로 볼 키스를 하며 뭐라고 즐겁게 떠든다. 네덜란드어는 독일어와 프랑스 말이 약간씩 섞여있는 듯하여 때로는 강한 독일어 엑센트와 불어의 독특한 비음도 함께 들린다.
나이가 얼추 칠십이 넘어 보이는데 차림새는 아주 세련됐다. 물론 얼굴은 유럽의 강한 햇살에 선탠을 많이 했는지 주름살이 깊이 파졌다. 두 할머니(?)는 아니 멋쟁이 여인의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매력적이다.
거의 5분 간격으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씩, 혹은 서너 사람이 서로 얘기를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생일 축하 자리인지는 모르지만 한 남자에게 선물을 전달한다. 받은 사람은 카드를 읽고 책과 와인 등의 선물을 받아 함박웃음을 짓는다. 네덜란드 중산층 노인 부부의 수다 모임이 아주 평화롭게 보인다. 오후 한나절, 그 부부 모임의 옆 테이블에 앉은 우리 가족도 수다를 떨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나이 드는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햇살이 가득한 오후 햇살을 받으면서 동네 친구 부부가 한자리에 모여 무언가를 축하하면서 서로 얘기하면서 웃음을 나누는 그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난 언제 저런 순간이 기억에 남아있나?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그나마 있던 부부 모임도 다 없어졌다. 한 달 전, 아들 결혼을 시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부부가 함께 일식을 먹은 후로는 기억에 없다. 이곳 북유럽에서는 해가 비추는 계절이 짧아서 인지 햇볕이 나면 전부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아주 춥거나 덥지 아니면 거의 야외 테이블에서 수다를 즐긴다.
마침 한국 뉴스를 보니까 이효리가 주름과 잡티 흔적이 있는 모습의 사진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질투 어린 갑론을박이 심하다. 난 억지로 주름과 잡티를 감추지 않는 44살의 이효리 모습이 오히려 더 좋아 보인다. 자신에 대해 얼마나 당당한가? 예뻐서 그렇다고?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톱스타들이 나이가 들면서 성형을 많이 하여 얼굴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연예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늙어가지만 정신적으로 더 당당하게 충만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마침 이에 대한 해답을 줄 것 같은 책을 발견했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엘렌 랭어 박사의 <늙는다는 착각>이라는 신선한 느낌의 책을 보았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가에 따라 장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를 담았다. 나이 듦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5년을 더 산다는 것도 발견했다. 이렇게 생각이 건강에 직접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알아냈다.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노화를 받아들이되 정신적으로는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면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노화를 바라보는 삶의 태도이다. 그럼 긍정적인 태도로 생각하고 살아가기만 하면 행복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에 대한 실험을 한 연구자가 또 있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로버드 월딩어는 “인생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계”라고 말했다. 행복하다는 것은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관계가 중요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독을 느끼지 않고 일상에서 양질의 관계를 갖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부부관계도 얼마나 서로 존중하는지가 중요하듯이, 친구 관계도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졌는가 보다는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행복한 삶은 부와 명예를 갖는 것이 아니라 부부, 가족, 친구와 공동체에서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75년간의 실험을 통해 알아냈다. 사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실증 실험을 통해 밝혀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부부가 애정도 없이 계속 갈등만 증폭되는 결혼이라면 차라리 이혼하는 편이 건강에 이롭다는 의미다. 친구도 만나면 왠지 피곤하고 대화가 서로 엉킨다면 피해야 할 친구다. 문제는 사회적 은퇴를 하고 난 다음, 관계의 밀도가 줄어들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
은퇴를 하고 나면 일반적으로 빨리 늙는다. 은퇴를 하는 순간 삶에서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가 사라짐으로써 심리적으로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늙어 몸은 아프고 할 일도 없다는 상실감과 우울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아등바등하지 않고 존재 그 자체에서 감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고 속으로 되뇌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 일상이 되면 어떨까. 내일부터 시도해보겠다. 사람은 나이 때문에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이 사라지면서 늙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은퇴 후에도 계속 취미생활을 하던 봉사활동을 하던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찾는다.
지금은 두 번째 서른도 훌쩍 넘어갔다.
나의 첫 번째 서른을 돌이켜보면서, 스쳐 지나간 두 번째 서른도 함께 생각한다. 젊은 서른 시절에는 여유로움이 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도 없고 미래는 불안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나의 서른은 어떤 날이었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는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맞다. 그렇게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청춘의 날들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는 사이 젊은 시절의 그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나의 첫 번째 서른 즈음에는 부와 성공에 대한 욕망과 함께 실패에 대한 불안감으로 삶을 소진했던 것 같다.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쉰 살 이후부터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면서 일흔 살까지 꾸준히 높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는 마지막 30년을 대비하기에 가장 취약한 세대이다. 기대 여명 90세를 처음 맞는 세대이기 때문에 누구로부터 배운 적도 없고 참고할 수도 없다. 우선 경제적으로 여생을 살아가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육체적으로는 장년기의 체력을 갖고 있지만 마땅히 할 일은 없어 마음이 공허하기 쉬운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서른을 생각하면 지금 두 번째 서른은 그나마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은가?
부부, 가족 그리고 친구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금 더 당당하게 늙어가길 소원한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간에 혹은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나 수다 떨 시간을 가지자. 이보다 더 좋은 안티에이징은 없다.
그 시간이 나의 옆을 지나고 있다.
글을 쓰면서 당당하게 그 시간의 문을 활짝 제친다.
또 다른 두 번째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