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출발점은 어디서 시작할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날이 그날 같고 지루해지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일상의 진부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꿈꾼다. 여행지의 그곳은 낯설기도 하지만 설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자주 가는 여행지는 어느새 익숙하기에 편안함은 있지만 금방 지루하기 쉽다. 그래서 낯선 새로운 곳을 찾는다. 서로 열렬하게 사랑했던 연인도 세월의 무게 앞에서 그 익숙함에 의해 차츰 애정도 시들어간다.
하루에도 지루함이 찾아오는 시간이 있다. 점심을 먹고 난 나른한 오후, 졸음이 오는 듯할 때 커피 한잔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잠시 푼다. 만일 그 음악이 처음 듣는 것이라면?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어느 순간 자꾸 들으면 익숙함을 느끼면서 계속 듣는다. 관심이 덜해지면서 다시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추천받은 노래는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 <그때 그 아인>와 4인조 밴드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었다.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젊은 시절 한 때 순수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차츰 들으니 노랫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는다. 넬의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어느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의 그 공기 속에도~”라는 가사가 가슴에 와 뭉클하다. 지금껏 삶에 익숙해지면서 이런 순수했던 감정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넬의 부드럽지만 허스키한 목소리와 드럼 소리가 나에게 잠시 젊음의 추억 속으로 빠지게 했다. 음악은 일상의 삶에 지친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또 다른 노래가 있다. 벌써 3년 전에 나온 노래인데 가끔 텔레비전에서 귓등으로 들으면서 지나친 노래였다. 악동뮤지션이란 이름으로 데뷔하여 지금은 ‘AKMU(악뮤)’로 활동하고 있는 남매 가수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노래다. 역시 처음 들을 때의 느낌은 낯설었다. 발라드 풍이라 듣기는 편안하지만 왠지 처음에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일단 유튜브 뮤직 <재생목록>에 다운로드를 해 놓고 난 뒤 잠시 숙성을 시켰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관심을 가질 때, 산책을 하다가 이 노래를 다시 들었다. 이수현의 맑은 미성과 이찬혁의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면서 감동의 시간을 보냈다. 노랫말을 새겨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잠시 가슴이 벅차 오른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했다.
왜 지금에서야 감동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거지?
처음의 낯선 순간이 지나고 숙성의 시간을 거쳐 어느 순간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듣는다. 그러면 음악은 어느새 익숙해지면서 편안하게 다가왔다. 가만히 생각하니 노래뿐만 아니다. 처음으로 내 귀와 눈 그리고 피부를 통해 접했던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일,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음식, 새로운 책과 옷. 그리고 새로운 스포츠 등 모든 것이 처음에는 낯설다. 새롭게 이사간 곳이나 전학을 가서 교실에 들어설 때의 낯선 느낌은 설레기도 하지만 또한 떨림도 함께 찾아온다. 과연 '새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생긴다. 그러다 친구와 관심을 주고받으면서 우정이 생긴다.
꽃을 가꾸는 것도 같지 않을까?
오래전, 난을 선물 받았다. 처음에는 양란의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시다가 어느새 익숙하다가 잠시 관심을 갖지 않으면 꽃은 빨리 시들어버렸다.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어느 듯 꽃의 존재 가치도 잊어버렸다. 뒤늦게 시든 꽃에 물을 주면서 애정을 가지고 살피니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해 핀 꽃은 이전의 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꽃은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다른 어떤 화려한 꽃보다 더 아름답고 예뻤다. 그것은 내가 관심과 애정을 쏟은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같지 않을까?
처음 만나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서 서로 편하다가 어느새 사랑하는 마음이 차츰 희석되기 쉽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자신을 주는 것”이라 했다. 자신 안에 기쁨, 관심과 호기심으로 채워진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사랑도 금방 고갈되고 권태나 집착이라는 괴물이 찾아온다.
사랑의 에너지가 자신에게 없는데 어찌 남에게 줄 수 있을까? 사랑도 낯섦과 설렘을 거쳐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과한다. 가만히 생각 없이 흘러가면 그 종착역은 불행히도 권태와 무료함이다. 사랑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관심이고 의지이자 인내라고 까지 하지 않았는가?
사랑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에게 책임을 질 때 사랑의 힘은 타인에게 전달된다. 나이가 들어가면 모든 게 익숙하고 심드렁하고 호기심과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삶의 이유도 사랑의 에너지도 고갈된다. 더 이상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게 익숙해질 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세상을 새롭게 볼 수는 없을까? 세상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필요한 이유다. 그 선택은 자신에게 있다.
처음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하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가장 어렵다. 낯설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 자주 했다던 말이 생각난다.
“이봐, 해 봤어?”
‘그래 제대로 한번 해보는 거야’
‘까짓꺼, 한번 해보고 브런치 작가 신청해서 떨어지면 다시 신청하지 뭐’
다행스럽게 얼마 후 승인을 받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렘과 두려운 감정이 오고 갔다.
‘할 수 있을까?’
‘반응이 없으면 중간에 관두지 않을까’라고 걱정도 했다.
‘일단 해보는 거지 뭐’
글을 쓰면서 ‘좋아요’ 혹은 ‘댓글’로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 혼자 일기를 쓰는 것과는 달랐다. 글에 대한 책임감도 따라왔다. ‘혹시 내가 말로만 하고 행동이 따라오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면 글에 대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함도 함께 따라왔다. 익숙해지면 권태가 뒤이어 쫓아온다. 그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세상과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길이자 독자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수록 보고 듣는 것에 새로울 것이 없다.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을 가꾸고 사랑하고 그 사랑이 확장되어 세상을 향할 수는 없을까? 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면 그나마 성장할 수 있지 아닐까? 가장 좋은 방법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고 일상에서는 새로운 음악, 새로운 그림, 새로운 소설 등을 자주 접할 수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새로운 것은 처음에는 낯설어 불편하지만 설렘도 있다.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자극에 나의 몸과 정신을 예민하게 열어 낯설지만 관심을 가지고 느끼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싶다.
사랑의 출발점은 관심과 호기심이다.
연구활동도 관심과 호기심에서,
예술의 창작 활동도 관심과 호기심에서,
취미생활까지도 관심과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관심과 호기심이 사라진 인생은 권태와 무력감만 찾아온다.
나를 사랑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사랑은 시작되고 확장된다.
<사진: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YG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