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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읽고 생각하고 쓰고...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by 엄재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빈자의 미학>의 저자인 승효상은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고, 건축이 사람의 삶을 바꾼다’라는 진실을 믿고 실천해온 건축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면 삶의 양식이 그대로 나타난다. 획일적인 구조와 사용보다는 교환가치로만 평가하고 계층으로 구분하는 외부공간의 모습은 우리의 의식을 반영한다. 꽃을 가꾸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를 느끼고 땅을 밟으면서 자연을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천박하지만 현실이다.


표준화된 공간에서 사는 우리는 생각까지 획일화되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납도 못한다. 내 생각과 다르면 미워하고 증오한다.


공간만큼 삶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또 있다.

자연이다.

서정주는 그의 시 <자화상>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자연의 위대함을 노래했다. 그 자연의 위대함도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간다.


‘나를 키운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 골목길, 여행, 그리고 그중의 팔 할은 책이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생명 창립자 신용호 전 회장은 1981년 광화문에 교보문고를 만들면서 이 말을 남겼다. 어린 시절 병치레로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독서로 배움의 의지를 키웠다고 한다. 이력서 학력란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고 쓴 일화는 유명하다. 공감한다.


과거에 읽었던 책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이 나이에 무슨 새삼스레 책을..?" 혹은 "책을 읽으면 눈이 피곤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다. 나 역시 불혹을 지나면서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단지 습관이 들지 않았고 그 즐거움을 느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수필 등을 읽으면서 의식이 확장되고 작가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얻을 수 없는 선물이다. 그 비용마저도 싸다.


2천 년 전, 저 멀리 로마에서 살았던 정치가인 키케로가 생각하는 우정과 노년을, 철학자인 세네카는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결코 돈 되는 일은 아니다.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제목으로 나온 베스트셀러가 있다면 아마 저자만 그 책을 팔아서 돈을 꽤 벌었을게다. 주식, 채권이나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다고 나온 책이 쏟아질 때는 이미 다들 이익을 실현하고 빠져 나가는 중이다. 그러니 돈 버는데는 오히려 ‘마이너스 손’이다. 투자는 긴 호흡을 갖고 해야 한다. 투자의 원칙만을 강조하는 책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때 ‘가치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점심을 먹기 위해 매년 진행되는 자선 경매는 엄청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치열했다. 2005년에는 중국의 다롄 제우스 엔터테인먼트 최고경영자 ‘주 예’가 26억 원에 낙찰받았다. 2008년 그와 식사를 한 '가이 스파이어'가 쓴 책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는 13,950원에 사서 그와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얼마나 가성비가 높은 투자인가?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인 ‘책’이 있다는 사실을 놓쳤다.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길을 안내한다.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삶의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가장 친한 내 삶의 또 다른 동반자이다.


그 동반자와 오늘도 함께 시간을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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