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할배투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재균 Apr 23. 2022

3할배투어(3) - 문제해결형 인간

화성의 언어와 금성의 언어

우리는 일상에서 대화를 하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대화하는 형식은 있는  보이지만 상대방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오히려  순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낸다. 듣는 시늉만 하고 자기 말만 쏟아내기 바쁘다. 그런 사람과 만나서 오랜 시간을 얘기하고 헤어지면 왠지 피곤하고 기운이 빠진다. 대화에서 듣기가 빠져 일방적이서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 경우를 일상에서 자주 목격한다.

     

 장면 #1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아내의 얼굴이 심상치가 않다.

오래전, 이사할 때 ‘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단독주택으로 갈 형편이 되지 않아 굳이 일층 아파트를 찾았다. 일층에 살아보니 장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특히 주말이면 발코니 화단 앞에 불법 주차하는 차량이 않다. 여름이면 택배 차량이 장시간 공회전을 한 상태에서 물건을 내리고 배달하기 때문에 배기가스가 발코니를 통해 열린 창으로 집으로 들어온다. 겨울에는 창문을 닫아놓기 때문에 덜하지만 여름에는 소음과 배기가스로 인해 짜증이 난다. 결국 아내가 관리실로 전화하고 직접 관리소장을 만나러 사무실로 찾아간 모양이다. 관리소장에게 아파트 내 불법주차를 단속해달라고 요청하니 소장 왈,     


“다들 참고 사는데~”라고 하면서


‘웬 호들갑이요’라는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고 했다. 아내가 화가 나서 “소장님 하는 일이 주민들 민원을 듣고 해결하는 것이 본업..!”이라고 목청을 높여도 그저 근성으로 듣고 넘기는 같다고 나한테 하소연을 하였다. 그 순간 나의 머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에 대해 회전하였다. 내가 관리실로 찾아가려는 것을 아내가 말렸다. 어차피 누구의 말도 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 순간 소통이 어려웠던 나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나 역시 힘들었다고 하면서 오히려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덧붙였다.      


게다가 내 병이 도졌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든 빠른 시간 내 해결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끝내 전화를 하고 불만을 얘기하니 역시 듣는 둥 마는 둥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관리소장은 내 말을 제대로 들을 생각조차도 없었다. ‘골치 아픈 사람이 또 전화 왔구먼~’ 말투이다.      


며칠 후 ‘주차 금지’를 표시한 범죄현장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끈을 떡하니 설치했다. 그냥 하는 시늉만 낸 꼴이다. 문제도 해결 못하고 오히려 화단 주위 분위기만 살벌하게 만들었다. 다시 요청해봐야 말씨름만 할 것 같아 포기했다.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몇 주가 지나고 나니 플라스틱 끈이 너덜 해져 치워 달라고 관리실에 다시 전화해서 여직원이 받길래 소장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이번에 새로 온 관리소장이에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잠시 당황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전화로 얘기하는대도 상대방이 내 얘기에 귀 기울어 듣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요..”

“내일 중으로 조치하고 그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불통에서 소통의 세계로 온 기분이랄까. 바로 다음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코니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보니 대형 이동식 화분이 여러 개 화단 앞에 놓여 있었다. 화분에는 초록의 관목이 있어 보기도 좋았지만 관리소장과 대화가 되고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더 감동했다.


 장면 #2     


정선의 오일장을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다. 일전에 소개한 <3할배투어>에서 계획한 여정이다, 함백산 만항재 하늘숲 공원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정암사를 거쳐 정선아리랑 오일장을 방문했다. 정선아리랑 시장은 1966년에 문을 연 시골장터의 모습을 갖춘 재래시장으로 매달 2일, 7일로 끝나는 날에 오일장이 선다. 가기 전에 아내로부터 강원도에서 나는 산나물을 사 갔고 오라는 명을 받았다. 지난번에 단양 오일장에서 달래와 냉이도 헷갈려서 달래를 두 봉지를 산 전력이 있어 아내의 주문을 문자로 확실하게 받았다. 주문 목록 중에 <수리취떡>이라는 게 있었다. 떡이긴 한데 ‘수리취’가 뭐지? 취나물의 일종인가?     


‘뭐 쑥으로 만든 떡처럼 산나물로 만든 떡의 일종이겠지’ 생각하고 정선 오일장에 들어서자 말자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달래, 두릅, 엄나무순, 수리취떡을 찾아 돌아다녔다. 어느 상점을 지나는데 맛보기로 상점 앞에 떡이 놓여 있었다. 포장에 수리취떡이라고 쓰여 있었다. ‘올커니 쉽게 찾았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일단 먹이를 확보하고 다른 먹잇감을 둘러보았다. 먹음직스러운 먹거리들이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꼬시라는 불리는 쌀강정 앞에서 잠시 멈춘다. 지난번에 너무 많이 사서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남아서 처리 곤란했던 아이템이다. 이번에는 자제를 해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나는 처음에는 절제를 잘하다가도 어느 변곡점을 넘어버리면 오버하는 스타일이다. 아내가 늘 옆에서 나의 충동구매를 조절한다. 이번 장에서는 옆에 있는 친구가 나의 충동구매를 오히려 촉발시킨다. 여기 도넛이 너무 맛있다고 꼬드긴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사주겠다고 한다. 누군들 공짜를 싫어하랴. 심지어 먹어보니 맛이 예사롭지가 않다. 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라명과 출신의 세프가 직접 손으로 반죽을 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다시 수리취떡을 파는 가게로 돌아와 그 떡을 사고는 동행한 친구들에게도 선물했다. 서로 주고받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공짜로 받는 기쁨과 기꺼이 주는 즐거움을 함께 누렸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의기양양’하게 오늘 사냥한 먹거리를 자랑삼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특히 개두릅이라는 불리는 엄나무순의 가격을 듣고는 아내의 얼굴이 환해진다. 홍천 시장에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이 정도 양이면 택배비 제하고 2~3만 원은 하는데 1만 원에 샀다고? 난 다시 목에 힘을 주면서 동행한 친구 동생이 정선에서 농사를 하는데 가게에 특별히 부탁해서 싸게 살 수 있었다고. 이것도 친구가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이라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을 하고는...     

근데 문제는 수리취떡에 있었다.


시장에서 먹어보니 단맛도 있고 좋았다. 아내는 내가 채집한 것을 요리저리 살펴보고 먹고 난 뒤에 살짝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이건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것이라 단맛이 많고 수리취 맛이 덜하다고 한다. 떡은 쌀의 품질이 중요하고 수리취 양이 많아야 향도 나고 맛이 있다고.     


'헐~~'    


그러고 보니 시장 떡과는 달리 포장이 예쁘고 공산품 냄새가 났다. 지난번에 광양에서 택배로 온 쑥떡을 먹을 때도 그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쑥을 많이 넣고 쌀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이다. 듣는 시늉만 했다. 이제야 기억이 난다.


아하~

그렇구나.

목표 지향형의 난 마치 미션을 수행하듯이 사냥감을 보고 급한 나머지 덥석 물었다. 이것저것 살펴보고 따져봐야 하는데...     


장면 #3


선거철은 지나갔지만 그 파장은 아직 남아있다.

아내가 교회 사랑방 단톡방에 어느 권사님이 편향된 정치적인 글을 계속 올리는 것을 보고는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안 보고 무시하는 것이 건강에 좋아요~”고 건조하게 조언했다. 내가 겪은 더 심각한 단톡방 경험을 전해주면서 “이런 경우는 약과라고~”하면서. 그럴 때마다 나의 머리에서는 그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고 분석하여 해결방법을 찾기에 바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아내는 조언을 원하지 않았다. 아내는 다만 나와 함께 공감을 원했다. 그 순간에 공감하면 될 일을 자꾸 문제로 만들어 해결하려 들었다. 결국 문제도 해결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하나 더 만든 꼴이 되었다.


세상에는 객관적인 관점은 없다. 객관적인 사실은 있지만 모든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는 주관적인 가치판단과 해석이 들어간다. 심지어 객관적인 사실조차 왜곡되기도 한다. 오히려 객관화는 나를 살피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상태이며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감지하는 힘이다. 특히 감정이 들쑥날쑥할 때 필요하다.     


문득 <화성에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생각난다. 아내와 가끔 불협화음이 일어날 때면 느낀다. 함께 오래 살았지만 서로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아내가 고민을 얘기하면 난 먼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지?’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린다. 아내는 정작 ‘문제 해결’보다는 함께 공감하고 위로받기를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떻게 할지를 몰라 어느 순간 서로 포기하고 살고 있는지는 아닌지 모르겠다. 아내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성 지향형의 “금성에서 온 여자”인 아내 마음을 문제 해결형의 “화성에서 온 남자”인 내가 잘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역지사지다. 일상에서 가끔 트러블이 있을 때 우선 나의 '조건적 반응'을 살핀다. 쉽지는 않지만 나의 감정 습관을 객관화하여 고치려고 노력한다. 아내의 금성에서 온 언어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잔소리’로 생각하는 순간 대화가 끊기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화성과 금성이 가까워야 하는데 오히려 멀어지면 곤란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련다.     


아내의 금성에서 온 언어에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내정치와 세계평화를 걱정하기 전에 일상의 소통과 가정의 평화가 최우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할배투어(2) - 취미가 뭐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