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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Aug 25. 2022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면서

왜 어떤 사람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화가, 음악가, 소설가, 시인, 과학자들은 어떻게 세상에 새로운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을까?

세상을 흔드는 그 창조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동안 구글 이미지에서만 본 화가의 명작을 직접 보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한 시간 반 만에 빈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베토벤과 요한 슈트라우스가 살았고 모차르트가 전성기에 ‘피가로의 결혼’ 등을 작곡하고 슈베르트가 태어난 음악의 도시에 왔다. 수백 년 유럽을 휩쓸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다. 공항 터미널을 지나면서 클림트의 키스가 LED 벽면에 가득하다.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전에는 빈을 떠나지 마세요…

라는 텍스트가 LED 화면에 흐른다. 클림트의 도시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나오는데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반갑게 맞이한다. 공항에 마중 나와서 내 숙소까지 차로 태워주었다. 호텔로 가니 아직 시간이 낮 12시밖에 되지 않아 체크인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친구 집이 가깝다고 하여 거기로 갔다. 와인을 대접받아 몇 잔 마시니 대낮부터 살짝 취기가 오른다. 친구가 고마웠다.


시간이 되어 다시 숙소로 갔다. 내부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도심에 있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져 있고 꽤 넓었다. 한 바퀴 돌아서 숙소로 오니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적당한 거리였다. 유럽은 어디든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어 좋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도 아침마다 공원에 산책을 했다. 푸르고 드넓은 잔디밭에 뛰어노는 강아지들이 있고 옆에는 호수가 있는 공원이 좋았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야외 잔디밭에 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내일은 드디어 그림을 보는 날이다. 살짝 설레인다.


지금까지 찻잔, 마우스 패드, 그림엽서 등을 통해 너무 많이 보았다. 심지어 구글의 증강현실을 통해서도 보아 왔지만 실제로 보면 감동이 더하지 않을까 기대가 넘쳤다. 지금은 눈 앞에 있는 그림을 내 맨 눈으로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길에 정수리에 바로 꽂히는 햇볕이 무척 강렬했다. 전철 트램에서 내려 출입문을 찾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햇빛 아래 걸으면 금방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기온은 35도에 가깝지만 습도가 낮기 때문에 그늘로 다니면 그렇게 덥지 않다. 벨베데레 궁전의 담벼락을 한참 걸으니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옆 문이 나왔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 앞 정원에 온 것처럼 넓다. 잠시 바로크 양식의 프랑스식 정원의 화려함에 압도되어 있다가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에 들어서자 웅장한 로비와 2층으로 올라가는 대형 계단의 화려함에 다시 감탄한다. 계단참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 정원은 아름다웠다.


드디어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실내로 들어간다. 빈의 아방가르드를 내세우면서 보수적인 예술과 전시 정책에 반항하면서 <분리주의>를 주창한 클림트의 그림이 있다. 한쪽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형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다소 시끄러웠다. 바로 클림트의 <키스> 그림이 있는 방이었다.


멀리서 그림을 보는 순간, 원본을 보고 있다는 감동은 있었지만 강렬한 인상은 없었다. 별로 감흥이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는데 그런 것인가?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가? 과잉 의도 증후군인가? 너무 잘하려고 하면 망치는 원리와 같은 것인가. 가까이 가서 제대로 감상할 시간과 공간이 없다. 작품이 지나치게 유명하면 감상자에게 결코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 그림을 보고 실망하는 것과 같다. 그림을 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제대로 그림을 감상하지 못한 채 자리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실망이었다.


떠 밀리다시피 하면서 다른 방으로 건너가니 에곤 실레의 그림이 있었다. 실레의 <포옹>이라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포옹, 에곤 실레>


 터치가 굵고 선이 거칠다.  남녀가 서로 뒤틀린 자세로 포옹하고 있다.  냄새가 뭉클 나는 남녀가 침대  엉크러진 시트 위에서 뒤틀린 자세로 격렬하게 포옹하는 모습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있었다. 그림 앞에 오래  있었다. 에로틱한 느낌보다는  남녀의 포옹에서 알수 없는 원초적 불안을 느꼈다. 성적 욕망에 불타 사랑을 나누지만 전혀 달콤하지 않고 몽환적인 느낌도 없다. 한마디로 도발적이고 직설적이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모습에서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 작품을 보면서 엑스터시(Ecstasy) 상태에 빠지는 ‘스탕달 신드롬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실레는 클림트의 제자였지만 클림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 <키스>처럼 몽환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 뒤틀린 구도에서 뭔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반항하는 본능을 표현하는 매력이 있었다.


클림트의 화려함과 세련됨과 다르게 색상은 어둡고 붓 터치가 거칠었다. 클림트의 <키스>보다 인간의 격정적인 욕망을 고스란히 전달하였다. 성적 욕망을 감추지 않고 거침이 없다. 당시 비평가는 포르노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지금 보더라도 도발적이고 과감한 표현기법이다. 실레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은 어디서 왔을까?


다음 날, 에곤 실레의 그림을 더 보기 위해 원래 계획에 없었던 레오폴드 미술관을 갔다. 실레의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에곤 실레는 자신의 몸을 그리는데도 거침이 없다. 자화상을 통해 인간의 욕정을 숨김없이 과감하고 도발적인 자세를 그렸다. 강렬한 붓 터치와 어두운 색상으로 표현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느낀 감정 그대로 거침없이 표출했다. 거침이 없는 그 느낌이 나는 좋았다. 그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파헤치는 정신분석학자와 같은 느낌이 든다. 에곤 실레는 그 많은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중의 자아를 알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실레의 자화상에서 셀피 찍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쉽게도 셀카는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다.


<죽음과 소녀>이라는 그림도 인상적이다. 4년간 동거하면서 실레의 모델이 되어 준 발리 노이칠과 이별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실레는 영악하게 자신의 더 나은 앞날을 위해 현실과 타협했다.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온 발리와 이별하고 중산층 출신의 지적인 여인인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다만 결혼 후에도 실레는 발리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길 원했다. 영화 <에곤 실레: 욕망이 그린 그림>을 보면 그는 양다리를 걸치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찌질한 면도 있는 에곤 실레다. 그래서 그가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발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큰 실망 속에 크로아티아로 가버린다. 거기서 종군 간호사를 하다 2년 후, 성홍열에 감염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실레는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중산층 출신의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했다. <죽음과 소녀>에서 미리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초점이 없이 퀭한 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죽음과 소녀, 에곤 실레>


죽음으로 표현된 어두운 남자가 바로 실레 자신이다. 아직 양심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죽음과 소녀>에서는 슬픔만 남아 있다. 특히 발리의 앙상한 팔과 자신의 초점이 없는 눈동자에서 발리에 대한 인간적 배신에 따른 고통을 표현한 것 같다. 그는 삶에 대한 에너지와 절망을 성애와 죽음에서 보았다. 거친 붓 터치, 강렬한 색채와 활력이 넘친 선으로 묘사한 그림은 너무나 적나라했다. 인간의 현실적 불안과 고독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였다.


                    <가족, 에곤 실레>


에디트와 결혼한 실레는 이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려고 했다.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상상하며 <가족>이라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아직 6개월 임신 중인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를 그렸을까? 새로 태어날 생명에 대한 희망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을 것이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기쁨과 함께 어깨를 누르는 그 묵직한 책임감이다. 그는 드디어 빈에서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어 빈 외곽에 이층 집도 사서 아틀리에도 만들었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기만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로 눈앞에는 뜻하지 않는 비극이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은 그가 계획한 대로 놔두지 않았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럽을 휩쓸고 가면서 임신 6개월이었던 아내가 아이와 함께 죽었다. 가족이 걸리면 모두 전염되어 속절없이 죽어갔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백신도 없고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적 지식과 치료도 없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병든 아내를 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력감 속에서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까지 스케치를 했을까? 자신이 이루지 못한 행복을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남기고 갔다. 3일 후, 실레도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클림트도 스페인 독감으로 생을 마감했다.


실레는 젊은 날에 많은 명작을 남기고 갔다. 그는 어린 나이에 같이 놀던 동생이 죽고 곧이어 아버지가 매독으로 고통을 받다 죽음을 맞이했다. 실레의 인간에 대한 불안은 어린 시절 겪었던 삶의 고통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 삶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기존의 모든 권력과 보이지 않는 억압에 도전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다. 예술가의 창조력은 익숙한 질서와 권위에 대한 반항과 도전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들은 반항하는 혁명가이자 혁신가들이다.


실레는 열정적으로 살다가 28살에 삶을 마감했다.

행복한 삶을 꿈꾸었던 실레도 가고 구스타프 클림트도 갔다. 인생이 우리 계획대로 된 적이 있던가? 결코 우리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 우리를 감동시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반항하고 운명을 뚫고 살아갈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그림은

가끔 실망시키고

많이 감동시키고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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