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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반려견 '재롱'이의 아프고도 행복한 기억

푸들이 영리하고 장수한다는 사실

by 엄재균

오늘도 재롱이와 산책을 간다.

재롱이와 나가면 이웃 주민들과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 주로 여성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시킨다. 재롱이가 다가오는 강아지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자연히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

“어머 이렇게 예쁘죠? 몇 살이예요?” 그쪽에서 묻는다.

“15살입니다만, 얘도 이쁜데요, 몇 살이죠?” 되묻는다.


그럼 바로 “어머, 너무 어려 보인다...”고 감탄한다.

“아니예요, 다 ‘털빨’이 있어서, 사실 그렇게 보이긴 하지요” 괜히 내가 기분이 좋다.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에 그 둘도 탐색하기 바쁘다. 작은 강아지일수록 경계심이 강하고 곧잘 짖는다. 재롱이는 상대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뒤로 물러선다. 재롱이는 나이가 들고 곱슬이라도 털이 많아 볼륨이 있어 어려 보인다.


동네 만남의 장소에서 친구들 흔적을 다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찰나, 재롱이 앞으로 아줌마가 오면서 놀라는 표정을 하면서 묻는다. “어머, 이 강아지 왜 다리를 이래요?” 묻는다. 갑작스럽게 묻고는 자기 길을 재촉하며 지나가 버린다. 대꾸할 틈도 없이 지나쳤다. 꼭 몸이 성하지 않는 자식에게 하는 소리 같아서 순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순간 재롱이를 보니 다리가 불편하여 한 쪽 다리로 ‘깨끔발’을 지으며 걸었다. 재롱이는 조금 힘들거나 급하면 ‘깨끔발’을 지으며 걷다가 곧 정상으로 돌아온다. 사연이 있다.


재롱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귀엽다고 재롱이를 안았는데 갑자기 버둥대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놓쳐버렸다.


‘깨깽~!’


비명이 나면서 깜짝 놀라 확인하니 걷지를 못했다.

급히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달려가 진찰을 받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못하고 다른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소개를 받은 병원에 예약을 하고 수술을 받았다. 푸들이 원래 다리가 길고 아직 어려서 뼈가 약해기 때문에 다리가 가장 약한 부위였다.


수술 후, 며칠 지나 나아지는가 했는데 계속 불편하게 행동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색한 발걸음을 했다. 병원에 가서 다시 확인했다. 뼈가 정위치로 붙지 않았다. 수의사가 재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지만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자연히 나아질 수도 있으니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알려준다. 확실하지도 않는 수술을 또 받게 할 수는 없어 경과를 관찰하기로 하였다.


차츰 발걸음도 회복되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하니 뼈는 약간 어긋나게 붙어 있었다. 육안으로 자세히 보아도 어긋난 부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재롱이가 급하게 걷거나 뛸 때, 가끔 깨끔발을 하는 이유이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조금만 조심해서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재롱이는 털이 잘 빠지지 않고 빨리 자라서 미용실에 자주 가야 한다. 미용실에 다녀온 날은 재롱이는 왠지 초라하고 불쌍해 보인다. ‘털빨’이 제거된 재롱이는 머리카락을 자른 삼손과 같이 힘을 잃고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가능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뭔가 어색해 한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강아지도 털이 있다가 갑자기 없으면 몸이 허전하고 자기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2019년 6월 볼륨있는 모습의 재롱이


나 역시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교문 앞에서 체육선생이 갑자기 나타날 때가 있다. 두발 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세우고 머리카락 길이를 확인한다. 기준보다 길면 가차없이 옆에 있는 선도부 선배학생에게 인계된다. 머리카락 중앙으로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린다.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 교실에 들어서면 몇몇 동병상련의 친구가 눈에 뜨이면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 때 그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가 애매하다. 나의 존재감이 확 떨어지고 며칠을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면 야만의 시간이었다.


재롱이가 몸의 털을 깎았을 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허전함은 아마 상실감에서 오는 감정과 비슷할 게다. 내가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릴 때와 같다. 재롱이도 그런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용실을 자주 가지 않는다. 털이 많이 자라 어쩔 수 없을 때만 미용실에 다녀온다. 그럴 때면 아내는 예쁜 옷을 준비해서 입힌다. 인터넷에서 요즘 집에서 직접 털깎기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배워도 애처러워서 못 할 것 같다. 재롱이는 항상 산책을 매일 하고 싶은데, 가족 모두 바빠서 산책을 생략할 때가 있다.


재롱이는 자신이 산책갈 수 있는 시간과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내나 딸들이 밖에서 돌아올 때, 그리고 내가 산책을 하고 난 다음 다시 데리고 나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혹간 아내가 밖에서 일 보고 늦게 들어올 때는 짖는 소리가 다르다. 아주 희귀한 고성을 지른다. 그냥 짖는 것이 아니라 억양에 높낮이가 있어 짜증을 내는 것 같다.


‘어디 가서 지금에야 오세요? 하루 종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하고 하소연하는 목소리와 표정이다.


짖는 억양과 표정이 정말 가지 각색이다. 사람도 표정이 많을수록 감성이 풍부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재롱이도 그렇다. 다만 재롱이는 자기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조금은 참다가 계속하면 바로 으르렁거리고 방어태세를 취한다. 표현을 다양하게 하기 때문에 영리한 것 같은데 어떨 때는 고양이처럼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궁금해서 검색을 했다. 나무위키에 나온 글을 인용한다.


“푸들은 다른 개와 고양이와 달리 털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략) 지능이 탑 3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나다. 때문에 훈련이 매우 용이하다. 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높은 활동성을 요구하는 품종이다. 요약하면 털 빠짐이 없고, 친화력이 좋고, 지능이 뛰어나며 수명도 긴 편에 속하는 품종이다.”


마지막 특징인 수명까지 길다고 하니 내심 마음이 놓인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부엌에 몰래 들어가다가 들켰을 때, 갑자기 재채기를 하고 머리털을 털던지 다양하게 자신의 놀란 감정을 표현하는 이유를 알겠다.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영리하다. 재롱이는 원래 장이 튼튼하지 않아 물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꼭 토하거나 물똥을 싼다.


어제는 내가 사과를 먹고 있는데 다리를 붙잡고 칭얼대길래 조금 떼어서 먹였다. 어찌나 잘 먹는지. 먹는 소리가 ‘싸각 싸각’ 거리는 소리에 내가 먹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바로 그 때 옆에 있는 큰딸이 제동을 건다. 자꾸 먹이면 물똥 싼다고. 그 물똥은 본인이 다 치운다고 강조한다. 그만 먹이라는 얘기다. 글쎄, 다 잘 먹자고 하는 일인데.


그래, 내가 그 물똥 다 치워줄께.

말로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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