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재킷의 꿈
지난 금요일부터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중계방송 보는 재미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새벽 3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5시간 가까이 손에 땀을 쥐며 파이널라운드 중계방송을 보는데 내가 오거스타 관중석에 있는 것처럼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연장전까지 펼쳐진 명승부에 푹 빠졌다.
어제 3라운드 결과는 로리 매킬로이가 1위(-12), 2위(-10)는 브라이슨 디샘보 외에는 두 자릿수 언더파 선수가 없어 오늘 로리가 그렇게 원하던 그린재킷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챔피언조에서 맞붙은 디샘보는 작년 US오픈에서 한 타 차로 로리를 꺾고 우승한 뼈아픈 상대로 첫 홀부터 로리가 긴장했는지 더블보기로 동타를 이루더니 2번 홀에서는 디샘보의 버디로 역전을 허용했다.
그 후 3.4번 홀에서 로리가 연속 버디를 잡으며 정신을 차리고 디샘보는 연속 보기로 무너지기 시작해 둘의 경쟁에서는 로리가 앞서 나가며 10번 홀 버디로 -14로 꿈에 그리던 우승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까다롭기로 유명한 오거스타 내셔널은 오늘도 우승재킷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로리가 13번(파 5) 홀 3번째 샷이 물에 빠지며 더블보기, 14번 홀에서도 보기로 3타를 까먹는 사이 오늘만 6타를 줄이며 분발한 44세 백전노장인 저스틴로즈가 -11로 경기를 마쳤다.
결국 로리 매킬로이는 18번 홀 보기로 저스틴로즈와 동타가 되어 예상치 못한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어떤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18번 홀에서 진행된 연장전에서 두 선수 모두 그린쟈켓이 없어 누구를 응원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로리에게 쏠렸다.
오거스타는 갤러리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입장할 수 없어 페어웨이와 그린 주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눈으로만 집중해서 보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저스틴 로즈는 2017년 세르지오 가르시아에게 연장패한 악몽이 있었지만 드라이버 티샷을 페어웨이로 잘 보내고 아이언으로 그린에 안착시켰다. 장타자인 로리는 저스틴 로즈보다 티샷을 멀리 보내 페어웨이에서 웨지를 잡아 핀하이로 붙였다.
마지막 퍼팅싸움에서 저스틴 로즈가 로리보다 먼 내리막에서 버디를 잡지 못하면 우승은 로리에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볼은 홀컵을 스쳐 지나갔고, 로리는 침착하게 짧은 거리 버디를 잡아 드디어 우승을 하게 되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오열하는 모습에서 마지막 남은 퍼즐인 마스터스 그린재킷을 입기까지 흘린 눈물과 땀의 무게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노장투혼을 보여준 저스틴 로즈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로리 매킬로이는 마스터스 17번째 출전 만에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그린재킷을 입으며 PGA 투어 4대 메이저를 모두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PGA 투어 사상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골퍼는 진 사라센, 벤호건, 게리 플레이어, 잭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에 이어 6번째라니 골프선수로서 대단한 업적을 기록했다.
우승인터뷰에서 로리는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선 16차례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 덕이며 평생 꿈꿔온 순간이 이루어져 행복하다"라고 했다.
이렇게 감동의 순간도 지나고 내년에는 우리나라 선수가 그린재킷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사진: 마스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