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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개구리의 삶 (40)

아내는 베스트 드라이버

by 촌개구리

1980년 뜨거운 여름 논산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교육을 마치고 대구에 있는 제2수송교육대에서 3개월간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군 운전병이 되기 위해 아주 오래된 'J603'트럭으로 교육을 받는 동안 얼차려도 많이 받고 내 우측 뺨은 조교 것이 되어 실컷 마사지받았다.


운전교육 막바지 경치 좋은 경산, 청도, 자인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도로연수를 받던 어느 가을날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가 생겼다.


​내가 운전하던 트럭이 비포장 시골길 저수지를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갑자기 핸들이 쑥 뽑혀 내 얼굴을 덮치고 그 바람에 방향을 잃은 트럭은 우측 논두렁에 쑤셔 박혔다.


​옆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던 조교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다 천장과 헤딩하고 적재함에 서 있던 교육생들도 자빠지며 나뒹굴고 한마디로 난리부르스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고 시동도 꺼트리지 않아 ​앞뒤로 나란히 가던 Convoy 트럭 행렬이 모두 멈추게 되었고 교육생들이 뛰어내려 논 속으로 들어가 밀어 꺼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만약 50미터 전에 핸들이 뽑혀 사고가 났다면 나는 저수지에 빠져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


​그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로 운전병으로 자대 배치되었지만 운전 못하겠다고 버텨 운전대 잡지 않고 정비병으로 복무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몇 년간 운전을 못했다.


​그러다 노총각으로 살다 결혼하려면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아 큰 맘먹고 중고차를 사서 운전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작은 접촉 사고는 여러 번 있었는데 대부분 추돌사고로 전방주시 태만하거나 깜박 졸아서 사고를 냈다.


​그러다 20여 년 전 추석 연휴에 친척집을 다녀오다 고속도로에서 졸음이 마구 쏟아져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옆에 타고 있던 아내에게 운전대를 일방적으로 맡겼다.


​장롱면허였던 아내는 무섭다며 안된다고 했지만 결국 핸들을 꽉 잡고 진땀 흘리며 고속도로 운전을 무사히 마치고 자신감이 생기자 아내 전용차인 '모닝'을 마련하게 되었고 동네방네 다니며 일취월장하며 이제는 나보다 운전을 더 잘한다.


​지난달 2박 3일 남도 여행을 다녀오던 길에 신형 SUV 운전대를 아내에게 맡기며 고속도로에서 스마트크루즈 기능을 사용하면 편하다고 조언을 해도 무섭다며 사용을 거부했다. 아내는 운전 중에는 라디오도 안 켜고 집중하는 스타일인데 덕분에 조수석에서 꿀잠을 잤다.


이처럼 아내의 운전 실력 덕분에 서로 교대해 가며 장거리 여행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장롱면허였던 아내에게 운전을 시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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