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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개구리의 삶 (45)

대왕문어가 맺어준 인연

by 촌개구리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에어컨 켜고 앉았다 누웠다 일어났다 책도 읽고 재밌는 드라마를 보며 피서 아닌 피서를 즐기고 있다.


그래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효과가 좋다는 오후 5시가 되면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땀을 흘리는데 어제는 운동 중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누구한테 왔었나 열어보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인 완도 사는 김여사 님이 이었다.


김 여사님 이름을 보자마자 3년 전 처음 만났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지방 여행 가면 시간 내어 꼭 들리는 곳은 그 지역 5일장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 해남살이 하면서도 해남읍 5일장에 들렸다.


아내와 함께 시장 곳곳을 구경하며 국화빵 하나로 25년간 4남매를 키운 '아영이네 국화빵'집에서 추억의 국화빵도 사고 아내가 좋아하는 대봉을 숙소에서 실컷 먹으려고 착한 가격에 많이 샀다.


점심은 시장 안에 있는 장터국밥집에서 맛있게 먹고 나머지 시장을 둘러보다 생선 파는 곳에서 좌판에 있는 생선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70대 여사장님이 "우리 집 문어 한번 구경 할텨" 하더니 망에서 꺼내 번쩍 들어 올리는데 대박~ 대왕문어였다.


문어가 너무 커서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연속으로 사진을 찍었다. 졸지에 모델이 된 사장님이 찍은 사진을 보자고 해서 보여드렸더니 자세가 좀 구부정하지만 마음에 든다고 핸드폰 번호를 찍어주더니 사진을 보내란다. '프사'한다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


그래서 나는 바로 사진을 전송해 드렸더니 웃으며 모델료는 없냐고 해서 마침 봉지에 들고 있던 대봉과 국화빵을 모델료로 1개씩 드리겠다고 하니 유쾌한 사장님이 이번에는 옆에서 장사하는 언니와 형부 것까지 줄 수 없냐고 해서 흔쾌히 3개씩 챙겨드렸다.


이렇게 구수한 남도 사투리에 유머가 넘치는 분을 만나 사진도 찍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9시 넘어 사장님이 사진 잘 찍어주어 고맙다고 전화가 왔다. 서로 통성명하는데 이름이 특이해 한번 들어도 영원히 기억할 거 같았다. 내 번호는 '작가님'이라고 저장해 놓겠다고 하시며 해남외에 주변 5일장은 다 다니고 있으니 혹시 완도 오면 꼭 전화하라고 했다.


이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 운동을 마치고 3년 만에 전화를 드리며 반갑다고 이름을 불러드렸더니 기분 좋게 웃으시며 여전히 힘차고 정겨운 사투리로 폰을 바꾸셨는지 내가 찍어준 사진이 달아났다며 다시 보내달라는 용건이었다. 그리고 완도에 꼭 한번 들리라고 해서 꼭 들리겠다고 하고 끊었다.


처음 김여사 님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갈 때처럼 기분이 너무 좋아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덥지도 않고 발걸음도 가벼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이 오면 일상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나를 찾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을 다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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