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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자 Jun 13. 2021

지극한 감정에 대한 호소

구름이 피워낸 꽃은 현대물이다

웹툰 장르 중 시대극은 변주가 적어 잘 읽지 않는 편입니다. 

출처 : 벅스

시간을 초월했다거나, 갑자기 과거의 인물이 현재 시대로 날아와 문명의 이기를 보고 놀란다거나 하는 패턴들이 이제는 크게 재밌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전개가 나오더라도 이제는 예상이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큰 기대감이 품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변주 없이 시대극과 로맨스라는 전통의 매력에 집중하니 나름의 매력이 피어나더군요. 신선한 변주는 없지만, 그 자체만으로 미묘한 감정 라인을 따라가게 되고, 시대극 나름의 정치싸움들도 제대로 그려지니 몰입되는 맛이 있었습니다. 


아 제가 어떤 작품인지도 이야기를 안 하고 서론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포스팅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리고, 동시에 제가 느꼈던 점을 정리하려고 하는 작품은 바로 네이버 일요 웹툰 [구름이 피워낸 꽃]입니다. 


*해당 글은 구름이 피워낸 꽃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구름이 피워낸 꽃

구름이 피워낸 꽃은 가상의 세계를 다룹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처럼 보이지만, 여성이 왕이 되었다는 점, 어린 세자들이 나름의 정치적인 역할을 해낸다는 점을 봤을 때 실제 역사보다 다소 진보적인 성향으로 세계가 그려지고 있음이 보입니다. 


그 세계 속에서 버려진 한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왕과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병약했던 궁녀는 소녀가 태어난 후 결국 죽고 말았고,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는 궁궐 내에서 어떤 권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그저 숨만 이어나갈 뿐이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구름이 피워낸 꽃

권력에 대한 욕심조차 가져보지 못한 소녀, 홍련은 어느 날 도운이라는 소년을 만나 변화하게 됩니다. 혼자서 약을 찾던 홍련과 마주한 도운은, 자신이 글을 가르쳐주는 대신 무엇을 자신에게 줄 것이냐 묻습니다. 어쩌면 이 순간마저 도운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홍련은 자신의 왕의 핏줄을 제공하겠다고 해, 이 둘은 작은 계약을 하나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날을 계기로 홍련은 변화합니다. 


도운에게서 글을 배우고, 검무를 배우고, 각종 지식과 궁궐 내 예법을 배우며 홍련은 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갑니다. 그리고 도운은 그런 홍련을 보며 자신의 가문을 일으킬 계획을 세웁니다. 그의 계획은 홍련이 2년 동안 외국에 사절로 다녀온 이후 (작품 상 권력관계에 있는 국가에 볼모로 다녀온 설정으로 보입니다. ) 시작됩니다. 결국 왕위에 오른 홍련은 궁의 중심이 되고, 도운은 그 덕에 자신의 가문을 궁 내에서 완전히 중심으로 만들게 합니다. 즉, 도운은 자신의 목표를 이뤄낸 겁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구름이 피워낸 꽃

하지만 문제는 도리어 목표가 이뤄지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자신만의 장기 말일 줄 알았던 홍련이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그 대상은, 홍련의 어린 시절 화재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이전 세자 전하의 호위 무사 백한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에 자신의 곁에 둔 것이었지만, 백한의 순수한 마음에 홍련은 반하게 됩니다. 도운은 자신 외의 대상에게 홍련이 마음을 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자신이 홍련의 마음의 1순위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용히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홍련 또한 백한과의 관계가 이뤄지기 힘듦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왕으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도 클뿐더러 이미 궁 내에는 양도운 가문의 세력이 가득합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왕이 된 이상 이들을 배척하고 자신만의 궁을 재구축한다는 건 사실 상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걸 홍련 자신은 누구라도 잘 알지만, 자신만을 바라보고 지켜준다고 하는 백한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도운이 주지 못했던 따뜻함이라는 감정이 느껴지고 그 감정이 홍련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구름이 피워낸 꽃

이렇게 스토리를 살펴보니 사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역사를 배경으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 그리고 그 음모 가운데 마음이 지치고 그 지친 마음을 순수한 이가 보살펴준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스토리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지극히 평범한 스토리에, 잠까지 자지 못하며 정신없이 이 웹툰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우리가 꾹꾹 누르려고 하는 대상을 고찰했기 때문입니다. 


서운하다는 말, 하면 손해라고 생각하시죠. 슬픔을 먼저 내비치면 안 된다, 화가 나도 일단은 누르고 안 그런 척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시죠. 단언해서 죄송합니다만,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사회적으로 성취를 얻으셨을수록, 반대로 사회생활에 지치셨을수록 이 말이 공감 가실 겁니다. 저도 그렇더라고요, 제 감정을 드러내면 그게 약점으로 작용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감정은 되도록 모른 척하고 그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법만을 찾게 되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구름이 피워낸 꽃

그러다 보니 홍련이라는 인물에 저도 모르게 몰입했습니다. 홍련은, 궁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 여러 훈련들을 받는데, 그 훈련 중 주된 것이 감정을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도운은 말합니다,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요. 감정을 숨기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라고요. 우리의 모습과 닮았죠. 우리는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느새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괴로워합니다,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니야, 내가 원한 것이 아니야 하고요. 많은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홍련에게 순수하게 잘해줬던 백한과 같은 인물을 찾고자 하지만 이걸 어떡합니까, 현실은 웹툰이 아닌데. 그리고 그런 순수함을 이야기하기 전에, 정작 우리는 타인에게 순수한 의도로 선행을 한 적이 있나 싶습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구름이 피워낸 꽃

구름이 피워낸 꽃은 시대극처럼 보이지만 현대극입니다. 극적인 로맨스 웹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감정을 꺼내 표현해내라는 나름의 호소적인 작품입니다. 완전한 컬러가 아닌 흑백을 배경으로 중간중간 색칠만 했을 뿐임에도, 이 작품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호소력 있는 bgm덕분도 아니고 아름답게 그려지는 배경 묘사도 아니고 보기 좋은 인물들의 그림체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인간 본연의 숨 좀 쉬고 살고 싶다는, 이 답답한 처세술 같은 이상한 태도를 그만 내려놓고, 나답게 살고 싶다는, 가상의 인물들의 호소가 작품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구름이 피워낸 꽃 중심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해봅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727476&no=1&weekday=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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