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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Sep 16. 2020

오래간만에 피 봤네~

순간의 방심

휴직 기간이라서 끼니를 대부분 집에서 해결을 한다. 삼식이 까지는 아니고 이식이 정도 되는데 매 끼니때마다 맛있는 반찬과 국 만들기가 어렵다.


밑반찬 만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뭔가 요리를 해서 먹고 싶어서 생닭 한 마리를 샀다.


요리를 소름 끼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먹을 만은 해서 닭볶음탕을 하려고 야채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야채는 다 준비했는데 갑자기 양파가 없어서 양파를 꺼내 껍질을 손질하고 뿌리 부분을 칼로 도려내는 순간~


윽!! 하고 시뻘건 피가 쏟아졌다.


멍청하게도 도마도 없이 칼날이 가는 방향에 손가락을 놓고 손질을 하다가 베어버렸다


빨리 지혈을 한다고 휴지로 감싸고 있었지만 멈출 기미가 없었다. 딱 봐도 깊게 베인 것만 같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후다닥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가겠지만 나는 남은 야채도 넣고 간을 다 보고 난 뒤에 병원으로 향했다.


와이프는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깐 빨리 갔다 오라고 재촉했다. 지혈이 좀 된 것 같아서 할 것 다하고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제발 꿰매지만 않았으면 했다. 왜냐면 마취 주사가 너무 아플 것 같았다. 하지만 마취 주사는 엄청 아팠다. 4 바늘 정도 꿰매고 파상풍 주사도 맞았다.


참고로 와이프 도 저번 설날에 고구마를 썰다가 손가락을 나보다 더 심하게 베었다.


무료했던 나의 일상에 피(?)로 물든 에피소드였다. 피를 본 대가로 2주 동안 설거지는 와이프가 하게 되었고 나는 불편한 생활을 해야 된다.


    


나의 부주의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남 원망할 것도 없는 게 왜 이렇게 스트레스받는지 모르겠다.


내가 당연히 했던 행동을 못해서 인지 칼 질을 주의 깊게 못한 자책인지 뭔가 내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 소중한 무언가가 “나의 무료한 일상”이라면 아무 의미 없고 심심한 나의 일상도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사람은 뭔가 놓치고 뺏겨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하던데 옛말 하나 틀린 게 없다.


와이프가 장인어른과 통화하다가 정서방 어디 갔냐고 묻길래 병원 갔다고 하니깐


“니는(내 와이프) 고구마 썰다가 손 베이고 정서방은 양파 썰다가 손 베이고 둘 다 잘한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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