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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Aug 31. 2020

나도 언젠가는 저 나이가 되겠지

프레임

며칠 전 법원에 갈 일이 있었다. 공탁 관련해서 신청할 서류가 있어서 처음으로 법원 민원실을 방문했다.

법 관련 행정업무라서 한 번에 서류를 제출하고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한번 딜레이 되면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처리하려고 한 마지막 날 법원 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추가로 서류를  출력하려고 근처 중구청에 민원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갔다

코로나 여파로 pc 가 2대였는데 1대로 축소 운영한다고 해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분이 계셔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흰머리에 연세가 좀 있으신 할머니였는데 , 인쇄물 출력을 많이 하고 계셨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자격시험문제 문항을 뽑고 계셨다

컴퓨터 사용을 10분 이내로 사용을 권장하고 사람도 많이 없고 해서 금방 끝날 것 같아서 앉아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출력물이 나올 때마다 끝나겠지 끝나겠지 했는데 20여분 가까이 출력할 인쇄물을 따로 종이에 확인을 하면서 천천히 뽑고 계셨다.

인쇄물을 뽑을 때마다 뒤에 내가 있다고 인지하고 계셨을텐데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계속 뽑으셨다.


처음에는 pc를 잘 못 다루셔서 그런가 뒤에서 잠깐 봤지만 느리긴 했어도 차분히 다 하시고 계셨다.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남구청으로 가서 서류를 출력 후 법원으로 향했다.





앞에 할머니를 기다리면서 평소 내가 노인에 대해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보는지 알게 되었다.


1. 더 이상 배움에 뜻이 없다

물론 다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저런 프레임에 갇혀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이 삶의 기준이 되어  더 이상의 배움은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느리지만 침착하게 사용을 하고 계셨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 시험문제를 출력하셨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지도 모를 일이다.


2. 무조건 도와드려야 될 대상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와드려야 될 때는 당연히 도와드려야 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에서 괜한 오지랖으로 도와드리겠다고 했으면 거절을 당했을 것 같았다. “나도 충분히 느리지만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왜?”라는 뉘앙스의 답을 받았을 것 같은 아우라였다. 도와드리겠다는 질문 자체가 듣기에는 “빨리 비켜 주세요”라는 말로 들렸을 수도 있다.


 



그날 다행히 법원 일 은 잘 처리되었다.


어쩌면 내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단편적일 수도 있다. 그때 그 상황으로 밖에 설명이 안되니깐.


나도 언젠가는 저 나이가 올 텐데 배움의 끈을 놓치지 않고 쭉~이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아무 말 없이 너무 장시간 쓰고 계신 거에 불만이 조금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아무 말 없이 그냥 나온 게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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