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학폭 이제는 끝

네덜란드에서 학폭당한 아이 자유를 얻다

by 김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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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학폭, 네덜란드 한인 입양인에게서 답을 찾다


나는 고민을 오래 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너무 나대다간 다른 학부모들에게 극성 부모로 낙인이 찍힐 수 있어'

'아이들끼리의 문제를 너무 키우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가 과장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


이런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정은 우리 아이를 가장 중심에 두고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릴적에 상처를 받지 않고 이 일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내 아이에게 최선의 방법은 그 아이가 다시는 우리 아이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는 것 이었다.


이방인으로 섯불리 잘못 접근을 하면 흔히 "아니 잘 몰라서 그러는데,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등의 일상적인 답변을 듣고 일이 마무리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철저히 조사를 했다. 부모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론은 아래와 같았다.

1. 아이에게 폭력으로 되갚으라고 이야기 하면 안됨.

2. 아이의 문제로 상대 부모에게 직접 접근을 하는 것도 안됨.

3. 학교 교사에게 먼저 이야기 해야 함.

4. 해결되지 않으면 내부신뢰자에게 공식적으로 조사를 촉구해야 함.

5. 내부신뢰자는 교장과 함께 문제를 책임져야 할 책임이 있음

6. 그래도 신뢰되지 않으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야 함.


이런 프로세스대로 따랐을 때 문제가 해결되면 다행이다. 주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정도 문제가 진전되고 나면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예컨데 괴롭힘이 심해 경찰에게 분리신청을 했는데도, 상대가 계속해서 괴롭혀 삶을 스스로 마감한 경우도 텔레비전에 보도가 되었다.

noah buiten.png 학교에서 야외활동중인 아들

다행히 우리 아이는 5살이라 그런 걱정은 아직 하지 않아도 되어 4번의 옵션을 택했다.


이메일을 정성스럽게 썼고, 그간 기록들을 차곡차곡 일자별로 정리해 이것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알렸다. 그리고 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인종차별적인 언행과 제스처를 취한 것도 기록에 남겨 제출했다.


교장과의 만남이 진행되었고 나에게는 다른 하나의 과제가 남았다. 그것은 아이가 인종차별적인 언행과 행동으로 얻게될 마음의 상처를 이해시키는것이었다.


다행히도 혹은 불행하게도 한인 입양인 아이들이 공식적으로 네덜란드 정부에 제출한 자료들이 있다. 아이들이 듣는 동양언어를 희롱하는 "샹키팡키 샹하이"라는 생일축하 노래, 눈찢기, 중국인! 이라는 표현이 한 사람이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어떤 고통을 남기는지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이런 행동들이 "양동이에 차곡차곡 쌓여 성인이 되면 흘러넘쳐 아픔을 주체를 할 수 없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교장을 만났다. 교장은 인종차별에 대한 방어를 하기 위해 다른 국가의 사람들도 네덜란드 사람들이 나막신을 신고다니는 것을 놀린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차분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내가 준비해온 글을 읽었다.


그 글을 듣고 나서 나와 함께 있었던 교장과 내부신뢰자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내부신뢰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릴적에 샹키팡키 샹하이를 불렀었다고. 그것이 그렇게 남에게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 했다.


교장은 이 일을 해결하는데 나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사용해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학교에는 아이와 관련된 사회복지사가 있는데, 이 사회복지사를 상대 아이의 집에 보내기 위해서 누군가 실제로 고통당한 아이의 이름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아무 문제는 아니었다.


교장은 이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대 아이는 다른 학교에 전학을 가야 한다고 일렀다. 나는 그 아이가 이 학교에서 무난히 지내는 것을 바란다고 이야기 했다. 물론 문제가 계속된다면 생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 했다.


우리는 한달 뒤 다시 약속을 잡고 흩어졌다. 교장은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매일 물어보았다. 괴롭힘이 계속되었는지. 괴롭힘은 지속되지 않았고 그날 이후 아이는 평온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한 달 후 교장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교장은 그 아이가 문제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었는데 공개적으로 행보에 나서주어 감사를 표했다. 다른 아이들도 우리 아이로 인해 괴롭힘을 받지 않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일이 다른 하나의 전기를 만들어주었다. 9월학기 시작 전 학교에서는 학년과 관련하여 부모상담을 요청했다. 우리 아이는 1학년을 거의 건너뛰다싶이하고 2학년에 올라갔는데, 2학년을 한 번 더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여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그런데 여기에 선생님의 한 혜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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