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정착기
네덜란드에 입국한지 7년이 지났다. 2018년 8월에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첫 발을 디뎠으니, 7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많은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며, 그 때의 젊음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활동할 날이 점점 지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 네덜란드에 발을 디딘 것은 한국나이 33세였다. 7년간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고 2년 후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약속하고 인천에서 암스테르담에 가는 러시아항공 편도를 끊어 들어갔다.
생존과 목적
들어가 바삐 석사코스를 하며 전화로 결혼준비를 했다. 당시 부모님 집에는 돈이 너무 없어 500만원을 지원받아 결혼을 준비했다. 유학기간 체류비는 네덜란드 교육부가 주는 5000유로 장학금과 그간 모아둔 과외비로 충당을 했다.
7년을 돌아보면 생존과 체류의 목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시간들이었다. 유학이라는 목적에 완전히 충실할 수 있었던 시간은 출국후 채 1년이 되지 못했다. 석사 학위를 마친 이후에는 몇 천유로 밖에 남지 않은 잔고를 마련하기 위해 투쟁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작게 크게 나의 유학을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 초기 어학을 준비하고 네덜란드에서 생존을 할 스킬을 얻게될 때 까지 공부라는 목적을 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가장 정직한 선택은 살기위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살기위한 선택은 누구에게도 존중받으며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배우자도 지지해주기가 좋은 선택이다. 한 달을 살게해줄 몇 푼의 돈을 버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인류는 이를 위해 문명을 만들고 여지껏 매일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 이상의 것
5년 새 자녀를 3명 낳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제한적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난 후, 더 간절하게 든 생각은 미래세대를 위한 나의 잠재적인 기여라고 생각했다.
다음 세대가 우리 자녀들이 나를 딛고 올라갈 무엇인가를 만들어주고, 이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다. 전 세대의 사람들도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음 세대를 돕는다는 일은 막연하지만 필요하고 절실한 투자이다. 직접 손에 꾸정물을 뭍혀가며 사회속의 잘못된 나사들을 끼워 맞추며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생의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지 않는 것처럼, 나의 기여가 극도의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일생에 몇 번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생의 저점이라 할지라도 장래에 기여해야 하는 분량에 대해 계속해서 나의 시간과 돈을 들여 확보해나가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체력
체력관리를 위해 축구를 시작한지 2년이 되었다. 나는 본디 축구파가 아닌 농구파였다. 농구는 좋은 운동이지만 나는 농구로 다이어트를 성공해본적이 없다.
축구는 운동효과가 아주 좋다. 축구를 하다보면 장딴지와 허벅지의 근육이 놀랄만큼 자란다. 인공관절을 심은 사람이 많은 만큼 무릎 부상의 위험은 있지만, 부상만 조심한다면 큰 근육을 키워 기초대사량을 키우기가 좋다. 더불어 당뇨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며 체력이 저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것은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이후에는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축구가 업었다면 이마저도 없었을 것이다.
축구는 주 1회 훈련과 주 1회 경기로 구성되어 있다. 훈련은 60분가량 미니게임으로 진행되며 게임은 90분이지만 나는 주로 60분 가량을 소화한다. 그 정도도 운동에는 충분하다.
로컬 축구팀 아마추어 6부에서 소속되어 운동을 한다. 일이 많지 않을 때는 새벽마다 혹은 아침마다 매일 나가 한 시간씩 땀을 흘려줬다. 긴장이 해소되고 긍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 좋다. 지금은 뒤꿈치가 까져 주 2회 정규시간에만 운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