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5일 22:41
9와 승강장
여러분, 지난주 한주는 어떠했나요? 저는 지금 지난주에서 여러분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가 조금 여러모로 힘들어서, 지난주 수요일 깜짝 메일링에서 댓글을 써주신 분의 글을 캡쳐해서 여러번 들여다 보았습니다. 치킨 먹고 싶다 이런 것도 좋으니 댓글 남겨주시면 제가 소중하게 여러번 본답니다. 가끔은 이렇게 서두에 짧은 답글도 달아볼게요.
손난로 댓글에 대한 답신
-> 손난로는 어느새 우리의 품안에서 아플정도로 데워진다는 문장이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생애 9할을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습니다. 겨울의 눈쌓인 풍경을 정말 사랑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떠나가는 강렬한 기억때문에 겨울이 버거워졌습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아프게도 하는 손난로처럼 모든 기억과 행복은 마찬가지입니다. 양가적으로 무엇인가를 분류하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질과는 다르게, 인생은 양가적이지 않습니다. 0과 1로 이루어져있지만 0과 1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죠.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은 행복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로 괴롭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생의 모순을 즐기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겠죠. 오늘도 그러한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려합니다.
9라는 숫자.
저는 9라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10이 되지 못한 9를 좋아해요. 요즘 소위 말하는 too much information TMI 이지만, 저는 99년생이어서 9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살짝 모자란 완벽하지 않은 9라는 숫자가 어떤 문화권에서 선호받는 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구요. 9라는 숫자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손난로에 대한 답신이 더 서문같군요. 하지만 아까우니 지우지 않을게요. 오늘의 이야기는 9가 아닌 지하철입니다.
지하철에 관해서 저는 할말이 정~말 많습니다.
왜냐하면 지하철은 저희 부모님의 30년정도 되는 직장이거든요. 부모님은 지하철 공사에서 처음 만나 사내커플로 연애 후 결혼해 저를 낳았습니다. 남동생이 있는 남매인데 둘의 피와 살은 아마 부모님이 지하철에서 일한 땀으로 이루어졌을 겁니다. 굉장히 식상한 표현같지만 그렇습니다. 어릴떄 꽤 재밌는 기억이 많고 지하철에 관해서 이상하게 아는 여담도 있습니다.
몇 개를 풀자면, 음.
승차권
제가 초등학생 즈음 그리고 그보다 전에도 승차권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교통카드 충전하는 곳에서 승차권을 팔았는데요. 카드보다는 조금 더 작은 표처럼 생긴 플라스틱 승차권을 승강구에 집어넣으면 찰칵하고 다시 올라오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아무래도 직원이다보니, 무료로 개찰구를 드나들 수 있는 무한 패스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서서 개찰구에 승차권을 계속 반복해서 집어넣으며 무료로 지하철을 탔습니다. 어느새 승차권도 없어지고 교통카드나 핸드폰을 쓰죠. 그보다 한참 전에 무한 승차권도 사라졌습니다. 참으로도 재미난 얘기죠.
짧은 두가지의 이야기
그리고 짧은 이야기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녹사평역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이태원 녹사평역은 굉장히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을 해서 다른 역사와 다르고 구조가 굉장히 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옛날 녹사평역이 지어진 초반에 사내 직원들이 결혼을 함께 할 경우, 녹사평역에서 진행하기도 했답니다. 들은 이야기여서 정확히 어떤 구조로 결혼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밖에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참고로 저희 부모님은 그냥 식장에서 하셨습니다.)
마지막 짧은 이야기는 지하철역에서의 자살에 관한 것입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지 생각보다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죠. 그런데 제가 어렸을때까지만 해도 스크린도어가 없고 지하철 선로와 대기하는 공간이 텅빈채로 이어져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종 사고가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선로에 떨어지는 경우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잘못 디뎌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한 영웅적 행보가 기사로 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선로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스크린도어를 만든 것으로 압니다. 지하철에 부딪혀서 죽으면 몸이 굉장히 빠른 속도의 거대한 열차와 부딪히는 것이기에 몸의 부위가 여러 군데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어느 역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의 팔이 두 세정거장 뒤에서 발견되는 게 당연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기하죠.
그런데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신기하다는 관점으로만 바라보자고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조종간을 맡고 있는 기관사는 떨어지는 사람과 눈을 마주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강렬한 트라우마로 더이상 복직하기 힘들어하시는 분들, 상담을 받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끔 전해들었습니다. 자살한 사람을 비난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뒤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되도록이면 살아있으면 좋겠네요. 음 그럴 수 있다면 제가 메일을 900화라도 연재할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도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바로 지하철에 관한 똥글입니다. 똥글이라고 하는 까닭은 메모할때는 재밌었는데 막상 적어보니 똥같아서 입니다. 시나리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적은 것인데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떠올린 것이기에 이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민하 배우가 부른 Amy Winehouse의 Valerie를 듣고 떠올렸습니다.
한 여자애가 있습니다. 사춘기 고등학생인 그 여자애는 저처럼 귀엽고 발랄한 성격입니다. 하지만 사춘기는 언제나 힘들고 실제로 집안의 분위기가 고역인 그 아이는 항상 이어폰을 크게 들어 귀를 막습니다. 지하철에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52분마다 한 남자애를 봅니다. 하필이면 그 둘이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매번 마주치는 것이죠. 둘은 서로를 인지하고 있지만 대화를 나눌만큼 능청맞지 못합니다. 그 아이들은 사계절이 넘어갈때까지 서로를 보기만 하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수줍게 입을 가리고 웃기만 합니다. 어느날 남자아이는 용기를 내서 편지를 여자아이에게 전해주지만, 클리셰적으로 여자아이는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듯이 남자아이는 커서 기장이 됩니다. 역근처의 바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는 갑자기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를 보고 그아이임을 깨달았습니다. 여자애는 노래를 아주 노련하게 부르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소재를 쓸때는 난 천재야 했지만, 아무래도 똥글 같아서 여기다만 공유해봅니다. 급하게 마무리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오늘은 지하철에 여러 면모를 보여드리려고 짧은 글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고 난 who> 라는 단편만화집에서 꼬마비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자살에 관한 이야기도 얹어보았습니다. 인상깊어서 인용하겠습니다. 꼬마비 작가님이 연재 후기에 적은 글입니다.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연결을 가지고 산다는 생각입니다.
그 고리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일 수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결이 이전에 사람은 누구나 혼자인 존재입니다.
(...중략)
그런 행위를 응원하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감히 그런 행위를 조롱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등지고 싶으면 등져야겠지요. 거기에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스스로가 편해지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방법을 조롱하면서까지 응원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굳이 이용한 까닭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지난주 유난히 제가 낙심했던 까닭은 먼저 세상을 떠난 저에게 꿈을 주었던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겨울에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봄을 기다립니다. 마치 다시 돌아올 것 같아서요. 이기적이게도 이 생이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붙잡고 싶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굴레로 삶을 견뎌내면 좋겠습니다. 살아야합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일요일 밤 즈음에 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이 글을 읽는 것보다는 밤에 읽는 것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하는 저의 작은 생각때문입니다. 오늘 밤 잘 잤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만 인사 올리겠습니다. 이만총총.
목화 드림.
2025년 2월 16일 10:30분에서 잘자라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