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aw n Lif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건 Oct 26. 2021

꿈과 사랑의 관계

내 꿈은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주도하는 것이다. 


Native Korean인 내가 세계를 품고 살아가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저 돈이나 권력에 대한 야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브런치라는 도구가 마음에 들어지기 시작한다). 


2012년 가을 무렵, 나는 지인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그 지인과 서로 함께 알고 지냈던 K양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몇 년만에 만난 K양은 예의 그 미모로 빛나고 있었고, 공연이 끝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K양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그 당시 내 상황을 말하자면, 나는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군대도 안갔다온 상태로 사시를 준비하다가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던 가난한 고시생이었고, K양은 국내 유수의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연구하는 촉망받는 연구자였다. 


나는 K양에게 푹 빠져서 자그마치 1년 동안 혼자 마음 앓이를 했고, 내 머리는 K양의 의사와 상관 없이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발견, 우연으로 얻은 행운 등을 뜻하는 말) 소설을 쓰고 있었다. 


재밌게도 그때 나는 처음으로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K양의 전공이 식품공학이었고 K양은 전 세계의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사명감과 비전을 가지고 식품공학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K양과 함께 세계를 무대로 삼아 뜨겁게 살아보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물론 K양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내 머릿속에서 지어진 것이었다. 


짝사랑을 1년 동안 한 후 나는 K양을 포기했지만, K양을 그리며 꾸었던 꿈과 열망은 9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머릿 속에,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꿈과 열망은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내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았으며,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철 없이 품고 살아간다. 


ps. 우여곡절 끝에 K양은 내 짝사랑이 끝난지 2년이 넘은 2016년부터 나와 교제하기 시작했고 K양은 2017년 내 삶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다.ㅋ


 

매거진의 이전글 모순된 감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