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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자 Feb 26. 2017

태극기집회를 가보다

'대통령 부재'에 대한 그들의 공포. 그리고 그 공포를 이용하는 정치인

(사진: 연합)


쌍화차를 6병 사서 가방에 넣었다.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평일 오전 11시, 태극기집회 주최자 측이 설치한 서울시청광장 텐트에 도착했다. 인터뷰에 응해준 할아버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쌍화차 덕분이었을까? (한 병에 천 원이다.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는다 ㅎㅎ )  


인터뷰 말미, 텐트로 들어온 한 할아버지로부터 "냉큼 나가라!"라는 호통을 받기 전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태극기를 한 손에, 성조기를 한 손에 들고 탄핵소추안 기각을 외치시는 분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대통령을 위하실까? 란 질문에서 시작된 취재였다. 취재 후기를 간략히 적어본다.   


(기사는 이곳에: 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3030226)




 많은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한국은 서구 국가가 200-300년 동안 느리게, 하지만 서서히 진행한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을 지난 50년 동안 "납작"하게 압축해서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나도 안다. 많이 들었고 읽어봤다. 그렇지만 문자로 읽었을 땐 "그렇구나"하고 넘겼다. 하지만 직접 그 "압축"된 역사를 보여주는 현장을 찾으니, 문자가 현실이 되어 내 앞에 우뚝하니 섰다.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가지는 '시민권'을 젊은 시절 몸으로 체화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정부는, 혹은 대통령의 모든 권력은 국민이 잠시 빌려준 권력에 불과하고, 대통령의 권력은 반드시 삼권분립에 원칙에 따라 사법부, 입법부, 그리고 제4의 권력이라 불리는 언론에 의해 견제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몸으로 '체화'하진 못한 것이다. 그 원칙을 체화했어야 할 사춘기 시절 그들은 교련복을 입고 '빨갱이'를 사살하기 위한 총련술을 배웠다.


 반공교육과 군사정권 아래서 사춘기 시절을 보낸 그들은 국가는 곧 나와 같다는 논리를 대신 체화한다. 그 체화 속에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항시 지내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의 머리엔 반공에 대한 정서가 머릿속에 굳건히 자리 잡혀있는데,  대한민국은 반공의 시대와 군사독재시대를 지나 완전하진 못하지만 어느정도 얼개를 갖춘 민주국가로 거듭났다.


본인들은 같은 자리에 서 있는데 국가는 그들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민주화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들이 사실 서구 국가들의 경우 2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진득하게 성취했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그들의 몸은 2017년에 있지만, 그들이 해석하는 정부와 시민의 관계는 19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부재 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감을 토로했다.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에게 대통령의 부재는 곧 나라의 위기를 뜻했고, 이것은 개인의 위기로 그들에게 치환됐다.  대통령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대통령 없는 나라를 그들은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들에겐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그들이 지금까지 개인의 자부심으로 여긴 '한강의 기적'은 곧 무너진다는 것이고, '한강의 기적'이 무너진다는 것은 자신들의 굳건한 자긍심이 무너진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한강의 기적'이 무너진, 대통령이 부재한 이 대한민국은 곧 북한에 흡수당할 것이라는, 걱정을 넘어선 공포감을 내게 말하였다.


그들의 막연한 공포감을 들으며, "그들을 설득하고자 한다면 우선 그들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란 질문이 들었다. 왜 그들은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면 나라의 안보가 흔들리고 그들이 자부하는 산업화의 결실이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연유는 어디에서부터, 그리고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든 감정은 어른들의 이 막연한 공포감과 60-70년대에 머물러있는 시민의식을 자신들의 정치적 기회를 위해 이용하고 있는 여당 의원들에 대한 분노다. 그들은 매주 토요 태극기 집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검찰과 특검의 짜 맞추기 편파수사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진태 의원)


 "거짓과 선동과 조작과 편파 방송들을 절대로 잊지 맙시다" (조해진 의원)


이런 발언들을 통해 박근혜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고 지신들의 정치적 결사체를 공고히 하려한다.


그 극대화된 공포감은 어른들의 손에 쥐어진 채 맹렬히 펄럭거리는 태극기와 성조기로 변형돼 나타난다. 공포감을 뒤로 감춘 태극기를 바라보며 여당 의원들은 "국회해산" (김진태 의원)을 외친다.  


본인들 스스로가 대의민주주의를 대표하고 행정부를 견제 감시해야 하는 의원들임을 망각한 것일까.  아니면 본인들의 정치적 수명에 도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을 이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 또한 민주적 시민의식이 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건,  참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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