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권력도 법 앞에선 평등하다는 그 원칙을 북한은 이해할 수 있을까?
2015년 10월 21일, 나는 북한에서 온 기자 둘을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20차 이산가족상봉 취재를 위해 2박 3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갔을 때였다. 취재를 하며 평양에서 온 북한 언론사 기자들 및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상봉 두 번째 날, 비공개 상봉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금강산 관광단지 내 호텔 안 카페에서 북한 쪽 기자 두 명을 마주 보고 앉아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두 명의 북한 기자 중 한 명은 40대 후반으로 보였고 다른 한 명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젊은 기자였다.
티브이에서만 볼 수 있었던 양복 재킷에 달린 김정일의 환한 얼굴이 담긴 배지를 바라보며 드는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당혹스러움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다. 민감할 수 있는 남북한 간 정치구조의 이야기가 나왔다.
아래는 그 대화의 복기다.
북한 기자: 북조선에선 정부를 가족으로 비유하자면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인민과 군대, 그리고 다른 정부 기관들이 아버지가 가정을 잘 꾸려나가실 수 있게끔 물심양면 도와주는 것이지요.
나: 우리는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를 그런 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곳이지만 행정부가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상위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3권 분립의 원칙하에서, 행정부 - 입법부 - 사법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론 간의 견제와 균형이 존재해요. 어느 부처가 다른 부처보다 높거나 낮은 것이 아니라 서로 견제와 균형 속에서 본연의 역할을 합니다.
북 기자: 아... 우리와는 다르군요.
만약 그 두 기자가 어제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에 대한 파면 소식을 들었다면- 2년 전 나눈 저 대화를 기억하지 않을까? 법 앞에선 그가 대통령이건, 일반 국민이건, 평등하고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원칙과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 그리고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말이다.
북한 언론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소식을 크게 다루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 소식을 북한 주민들이 듣는다면- 대한민국에선 그가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법위에 서지 앉으며 삼권분립의 원칙 아래에선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 할 수 없음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남조선에선 어떻게 일개 법원이 대통령을 파면시킬 수가 있는 것이지?" 란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북한 언론이 지금까지 어떤 입법적 탄핵 절차에 의해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그 탄핵소추안이 어떻게 해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그 법적 정당성이 인정되었는지 자세하게 보도하지 못하는 이유다.
어제 세 줄 문장으로 짤막하게 나온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단문 기사는 북한 언론이 이 사안에 대해 가지는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중통은 해당 보도에서 이번 파면 결정의 논거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세 문장으로 이루어진 기사에서 북한은 "지난해 12월 9일 남조선의 국회에서 통과된 박근혜 탄핵안을 놓고 3달 동안 재판심리를 해온 헌법재판소는 이날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로 박근혜에 대한 탄핵을 결정하였다”라며 "이로써 박근혜는 임기 1년을 남겨두고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였으며 앞으로 일반범죄자로서 본격적인 수사를 받게 된다고 한다”라고 짤막하게 보도했다.
헌법의 원천은 국민이고, 대통령에게 이 헌법수호의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대통령이 헌법의 정신을 위배했을 때 국민은 지도자를 파면시킬 수 있다는 원칙을 보여준 이번 헌재의 결정을 북한 정권이 절대주의 정권 아래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설명해줄리 없다.
이번 탄핵절차에 대한 보도는 북한 사람들에게 "절대권력을 누리는 지도자를 남조선은 용인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일깨월 줄 것이다. 그 일깨움을 북한 정권이 국민들에게 주고 싶을까?
박사모와 보수단체에선 이번 탄핵절차가 친북단체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정반대다. 북한은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가 이루어낸 '대통령 파면'이라는, 절대권력체계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인민들에게 상세히 알려줄 수 없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 북한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두려움을 - 지도자를 포함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를 - 어제 우리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