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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자 Feb 18. 2017

안희정은 오바마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확고한 민주주의자인 그에게 오바마를 보다


"오바마 대통령 연설이랑 느낌 비슷한데?"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발언을 시청하면서 이 생각이 스쳤다. 안 지사가 민주주의의 가치와 그 가치 아래서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할 때였다. 안 지사와 오바마 전 대통령과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둘은, 철학적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정략적 논리에 빠진 사람들이 봤을 땐 "참 쓸 데 없는 생각"을, "구름 위 걷는 말"을  많이 한다고 비칠 수도 있다. 안 지사는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열변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전제 아래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내는 제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론을 향해 가는 과정은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뭘 해주겠다고 총통 선거하듯 얘기하는데, 나는 민주주의 공화국의 대통령 후보로서 비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를 뽑아주면 다 해결해줄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혜가 아니고, 이거 저거 해주겠다는 건 민주주의 정치인의 어법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 못 한다.

정치란 한 국가의 오퍼레이팅 시스템(OS·운영체제)을 정비하는 일이다. OS가 잘 정비되어 있으면 퍼포먼스는 국민이 한다. 민주주의라는 OS를 업그레이드해서, 거기 깔린 애플리케이션이 일제히 바뀌는 효과를 유도해야 한다. 애플리케이션 몇 개 개발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보겠다? 그렇게 접근하면 나머지 애플리케이션도 어떤 혜택도 못 받고 변화도 없다. 

좋은 OS를 제공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이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 참여와 자치의 원리, 공정과 투명성의 원리가 들어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이 세 가지 원리가 부족하다. 검찰·언론·재벌 문제를 따져보면 다 여기서 막혀 있다.  

<시사IN 491호>


물론 다른 대선주자들도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다들 말한다. 하지만 안 지사에겐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른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느껴진다. 민주주의의 원칙 아래서는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을, 지녀서도 안 된다는 점을 말한다.  만약 대다수 유권자들이 "뭘 해주겠다"는 리더십을 원하고  그런 리더십이 그가 주창하는 민주주의적 리더십과 방향성이 다르다 할 지라도, 그는 단순히 표를 얻기위해 자신의 발언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민주주의적 정치인이라는 말은 그가 곧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의회주의자라는 말과 같다.


그는 20대 후반 시절부터 의원 보좌관으로서 정당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기에 의회정치의 기본은 정당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치를 배운 그가 민주당 경선 당선의 가능성을 계산해가며 수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여태까지 보여왔던 철새형 정당생활을 하진 않을 것이다. 마치 동네 동호회 활동하듯 몇 개의 정당을 들락날락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왜냐하면 그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의회주의를 믿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가 안 지사에게 민주당에선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니 자기와 민주당을 나오자고 했고 안 지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온 발언 속에 드러난 철학들을 보면 그의 거절은 당연한 것이다. 한 사람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려면 그의 과거를 보라는 말이 있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 캠프에 있다가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 전 대표가 자신이 반대하는 문재인 후보의 경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민주당 탈당카드를 만지작거렸다는 보도는 그런 점에서 놀랍지 않다. 그의 과거를 살펴보면 답은 이미 나와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안 지사의 향후 행보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가 이번 경선에서 문 후보에게 패한다 해도, 혹은 경선 과정 중 패할 가능성이 확실하다 해도, 그는 1997년 이인제 한나라당 의원이 그랬듯, 혹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2007년에 그랬듯 - 당을 뛰쳐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 다시 한번 말하지만 - 민주주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믿는 의회주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안 지사의 과거 발언들을 보면 그가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사유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안 지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오바마는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까지 시카고 대학에서 헌법을 가르쳤던 교수였다.  시카고대학 로스쿨에서 미국헌법을 가르치며 1787년 처음 쓰인 미 헌법이 현시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고, 달라진 시대상황에 맞게 수정된 해석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는 얼마나 커야 하는지 항상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그 또한 안 지사처럼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은 그가 쓴 수많은 연설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OBAMA: Tonight, we gather to affirm the greatness of our nation not because of the height of our skyscrapers, or the power of our military, or the size of our economy; our pride is based on a very simple premise, summed up in a declaration made over two hundred years ago: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i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오늘 밤, 우리는 모국의 위대함을 확인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지만 그 위대함은 우리가 가진 고층 건물의 높이나, 우리의 군사력이나, 우리 경제의 크기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부심은 약 2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간명한 선언에 요약돼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며 창조주에 의해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양도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는다라는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미 독립선언문)
                                                 -
If there's a child on the south side of Chicago who can't read, that matters to me, even if it's not my child. If there's a senior citizen somewhere who can't pay for their prescription and having to choose between medicine and the rent, that makes my life poorer, even if it's not my grandparent.

If there's an Arab-American family being rounded up without benefit of an attorney or due process, that threatens my civil liberties. It is that fundamental belief -- it is that fundamental belief -- I am my brother's keeper, I am my sisters' keeper -- that makes this country work.

남쪽 시카고에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저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 아이가 제 자녀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한 노인이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집세와 의료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은 저의 삶 또한 어렵게 만듭니다. 그분이 제 조부모가 아니어도 말입니다.

아랍계 미국인들이 변호사 선임이나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구속된다면, 그들의 구속은 저의 시민권을 위협합니다. 우리 모두가 미국 형제자매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보호자라는 믿음. 이 기본적인 믿음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연설로 오바마 당시 일리노이 상원의원은 전국적 명성을 얻는다 (Getty images)


이 연설로 인해 오바마는 전국적 명성을 얻으며 상원의원으로서의 첫 8년 임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불과 3년 후 초선 상원의원으로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한다.


오바마가 2008년에 벌였던 힐러리 당시 상원의원과의 치열했던 경합은 지금 안 지사가 문 후보와 곧 가질 경선구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지금 문 후보가 30%에 가까운 지지율을 벌이며 안 지사와 10% 정도의 차이를 보이며 문재인 대세론을 이어나가고 있듯, 9년 전 경선 직전까지 미 언론 및 정치평론가들은 힐러리의 경선 승리를 기정사실화 했었다.


힐러리에겐 오바마에게는 없는 당내 탄탄한 조직력이 있었고 클린턴 정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얻은 정치적 경험 또한 지니고 있었다. 오바마는 이런 부족함들을 뛰어난 연설 실력과 흥미로운 성장배경으로 이루어진 개인적 매력을 가지고 뚫어나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의 개인적 매력에 매료된 젊은 유권자들이 중심이 된 미 각 지역에서 이루어진 풀뿌리 지지활동도 그의 경선 승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정확히 딱 떨어지는 비유는 아니지만- 9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후보는 흡사 9년 전 힐러리와 비슷한 포지셔닝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에겐 당내 탄탄한 지지세력이 있고 충성심 높은 지지층이 있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힐러리만큼 중앙정치에서 경험도 쌓았다.  


그런데 나는 안 지사로부터 오바마의 모습이 겹친다. 그가 마이크 앞에서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열변할 때 오바마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일 때 오바마는 대권 도전을 했고 난 그의 연설을 보며 감탄했었다. 그 후 수많은 정치인들의 연설을 보고 들었지만, 오바마의 연설이 주는 만큼의 감동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비슷한 결의 감탄을 느끼고 있다, 안 지사로부터 말이다.


경선 시작 전 매력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대세" 힐러리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오바마는 첫 경선 지였던 아이오와에서 보기 좋게 그 평가를 깨트린다. 그리고 민주당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프라이머리를 힐러리와 치른 끝에 당 후보권을 따낸다. 그리고 미 제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9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의 첫 경선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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