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속 오해와 진실 (2)
“우와~ 기장님이시면 여러 나라 여행 많이 다니시고 좋으시겠어요~” 제 직업이 기장임을 알게 되는 순간 대부분의 지인들이 처음 보이시는 반응인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바케(Case by Case)’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저비용 항공사의 경우 국내 공항과 일본,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괌, 사이판 정도가 주요 취항지인데, 통상 출발지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가느냐에 따라 체류 여부가 결정됩니다.
국내선과 편도 3시간 이내의 구간은 통상 ‘퀵턴’ 노선으로 분류됩니다. 말 그대로 빨리 갔다 오는 비행이지요. 모시고 간 승객들이 목적지에 내리시면 후다닥 기내를 정리한 다음 돌아오는 승객들을 모시고 바로 출발지로 돌아옵니다. 그렇다 보니... 아마 제가 지금까지 제주도에 가본 횟수가 최소 500번 이상 되는 것 같은데, 막상 제주공항 바깥 경치 좋은 곳에서 싱싱한 회 한 점에 소주 한잔 해본 기억은 고작 열 번 이내에 불과합니다. ㅠㅠ
아~ 일본이나 대만 같은 국제선의 경우에는 ‘퀵턴’이라 하더라도 간혹 한두 시간 여유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땐 승객분들이 내리자마자 부기장의 손을 잡고 룰루랄라 노래 부르며 비행기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왜냐고요? 공항 면세구역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와 필수 구매 물품이 즐비하거든요. 이를테면 타이베이의 완탕과 밀크티, 도쿄의 바나나빵 같은 것들 말이죠.
홍콩을 넘어 동남아로 가거나, 괌•사이판 비행일 경우에는 하루 또는 이틀의 체류 시간이 주어집니다. 와우~ 그때는 신나게 여행을 즐기시면 될 것 같다고요? 쩝... 일단 그전에 여러분들이 여행 가셨던 기억을 한번 떠올려주세요. 언제 출발해서 언제 도착하셨나요? 네 맞습니다. 대부분의 동남아 노선은 저녁에 출발해서 현지에는 한밤중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지요. 20대라면 달밤에 체조라도 하겠지만, 마흔 살이 넘어가니 체력이 달립니다.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 캔 꺼내 마시고는 바로 잠자기 바쁘죠. 그리고 제가 후다닥 잠을 자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늦게 일어나면 호텔 조식을 못 먹거든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조! 식! 은 필수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조식을 먹고 나면 지역에 따라서 근처 쇼핑센터에 가거나 마사지를 받는 여유를 부리기도 합니다. 부기장 시절엔 기장님들 쫓아다니는 게 참 좋았었는데, 시대가 바뀌다 보니 기장이 된 요즘은 일부러 혼자 다니기도 하죠. ‘꼰대’ 될까 봐 두렵거든요. 그렇게 돌아다니며 대충 저녁 요기를 하고 나서는 어두워지기 전 얼른 호텔로 돌아와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합니다. 어젯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바로 오늘 제가 출발할 시간이고, 그때부터 ‘깊은 밤을 날아서’ 한국으로 와야 하거든요. 설마... ‘비행기에서 자면 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안 계시겠죠? 저희는 승객분들이 한국까지 오시는 동안 편안히 쉬실 수 있도록 두 눈 부릅뜨고 비행해야 합니다... 혹시나 앞으로 공항에 도착하셨을 때 새빨갛게 충혈된 멍한 눈으로 걷는 조종사들을 보시거든 마음속으로 ‘토닥토닥’ 한 번씩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주 가끔은 이틀간의 48시간 체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때는 좀 여유롭게 주변 관광지도 둘러보고, 함께 간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죠. 어떤 경우에 그렇게 긴 체류가 가능하냐고요? 바로 이겁니다. ‘어디 어디 주 7회 취항’ 이러면 매일 한 대씩 들어가기 때문에 전날 도착해있던 조종사들은 딱 하루만 쉬고 다음날 들어오는 항공기를 받아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반면, ‘주 5회 취항’ 노선일 경우 계산상 주당 두번 정도는 48시간 체류의 행운을 얻는 조종사가 생기게 되는 것 이랍니다. 네. 뭐 당연히 저 같은 막내 기장들에겐 그런 기회가 흔치 않겠죠?
자~ 어떠신가요? 이 글을 읽으신 후에도 조종사들의 매 비행이 여행이라 생각되시나요? 그때그때 다르죠? 하지만, 새로운 나라의 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소중한 혜택이라 생각하기에, 늘 승객 여러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가셔야 저도 비행을 가거든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