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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per Jun 25. 2020

저비용 항공사는 지연 대마왕

비행기 속 오해와 진실 (3)

“아... 또 지연이야? 연결편 지연이 뭐야 대체? 이래서 LCC는 타면 안 돼, 대형 항공사는 이런 지연 없잖아!”라는 푸념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과 많이 달라요~”입니다.


항공기가 지연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합니다. 좋지 않은 날씨부터 긴급한 환자 발생까지 정말 상상하지도 못할 수십수백 가지의 이유가 있지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형 항공사는 빨리 가고 저비용 항공사는 더 늦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통상 항공기가 지연되는 이유는 관제허가 지연, 공항의 기상악화, 항공기 결함인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이는 어느 항공사나 똑! 같! 다! 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 관제허가 지연은 동일 시간대에 많은 항공편이 집중되어 발생합니다. 국내선의 경우 대부분의 항공편이 집중되어있는 김포와 제주 공항에서, 국제선의 경우 당연히 인천공항에서 특히 동남아로 향하는 항공편이 집중된 저녁 시간대에 많이 발생하지요.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한 순간 “우리 비행기는 이륙 준비가 완료되었으나...(중략)... 관제탑의 이륙 허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비행기의 이륙 예상시간은 앞으로 약 50분.......”이라는 기장 방송이 나오는 순간! “헐....” 하셨던 기억. 분명히 있으실 겁니다. 김 빠지죠...

이는 대다수 여행사와 항공사들이 저녁 8 ~ 9시경에 동남아 노선을 집중 편성하면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혼잡 현상입니다. 이때 이륙 순서를 결정하는 기준은 항공사의 규모와 네임벨류가 아닌 ‘비행계획서상의 이륙시간’과 ‘이륙 허가 요청 순서’이고요. 그러다 보니 모든 조종사들은 이륙 허가를 먼저 요청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1초 차이로 다른 항공기가 먼저 이륙 허가를 요청하게 되는 순간, 이륙 시간이 10분 이상 뒤로 밀리게 되거든요.


여기서 잠깐! 이륙 순서 하나 밀렸을 뿐인데 왜 1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요? 바로 ‘간격 분리’ 때문입니다. 항공기가 다니는 길인 ‘항로’는 자동차 도로와 달리 가상의 한 선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수직으로 나뉜 고도별 차선(?)이 있습니다만, 항공기 성능 및 연료 효율성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이용 가능한 차선은 기껏해야 편도 2~3차선 정도라 보시면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동남아행 항로는 홍콩을 거치는 길 하나뿐이라는 사실!

한번 상상해보세요. 인천, 대구, 부산뿐 아니라 일본 및 중국 각지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모두 홍콩 상공을 향해 달려든다면? 당연히 그곳에서 항공기들이 적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겠죠? 자동차라면  밀리는 구간에서 ‘섰다 갔다’를 반복하면 되지만 비행기는 멈출 수가 없으니 아예 출발 전에 이륙 간격을 약 10분 정도로 분리하는 겁니다.

베트남까지 가는 항로와 그 항로로 합쳐지는 항로들

결국 ‘관제허가 지연’이라는 건 항공기가 집중되는 특정시간대에 공중에서의 정체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요청한 순서대로 이륙 순서를 부여하는 것이지 항공사의 규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씀~


다음으로 기상악화로 인한 지연은 말 그대로 항공기가 이륙할 수 없는 기상 상태이거나 목적지 공항의 기상이 착륙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될 때 발생합니다. 이건 항공사별 차이 보다는 조종사의 자격과 항공기 탑재 장비에 영향을 받긴 합니다.(그건 다음에 자세하게...) 출발 공항의 날씨가 아무리 화창하더라도 우리가 도착할 시간대의 현지 날씨가 착륙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외국까지 가서 착륙에 실패하고 주변 공항에 비상착륙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항공기 결함. 뭐 이건 다른 답이 없습니다. 고쳐야죠.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대한민국의 조종사, 정비사, 승무원들은 회사와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의 교육을 받고 동일한 시준의 심사를 거쳐 일하는 사람들이기에 능력의 차이는 별반 없습니다. 부품 수급 문제도 LCC 항공사들이 처음 생겨나던 초창기에는 대형 항공사에 비해 많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필수 수리부속은 물론 엔진 같은 고기의 예비 부품도 각자 구비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바로 고칠 수 있는 부위의 결함인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위의 결함인가의 문제이지 이 또한 항공사별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간혹, 결함이 생기면 일단 항공기를 교체하는 게 빠르지 않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항공기를 교체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절차와 여러 가지 서류 변경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결함이라면 정비에 소요되는 시간보다 항공기를 교체하는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특히, 해외 공항에서 항공기 결함이 발생했을 경우 강력하게 대체기 투입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웬만한 결함은 그냥 몇 시간 기다려 수리하고 오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무작정 대체기를 투입했다가는 법에서 정한 조종사 근무시간문제 때문에 오히려 지연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거든요. 항공안전법 상 조종사는 어떤 식으로든 비행임무에 투입되면 그 비행이 종료된 시점부터 일정시간 동안 휴식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대체기를 가져온 조종사의 최소 휴식시간이 10시간이라고 가정할 때, 대체기가 준비되고 해외 공항까지 이동한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에효... 그냥 현지에서 항공기를 열심히 고쳐서 타고 오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요?

조종사 최소 휴식시간 기준

자~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연결 편 지연” 이것은 무엇이냐. 항공사는 한대의 항공기를 하루 한 번의 비행에만 투입하지 않습니다. 소형기 한대의 한 달 임차비용만 해도 30억인데 한대당 하루 한편만 운항한다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도 항공사는 망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수시간의 여유를 두고 계속해서 항공기를 비행에 투입합니다. 이 과정에서, 항공기가 이전 비행에서 발생한 지연으로 인해 다음 비행 스케줄까지 영향을 주었을 경우 이를 ‘연결 편 지연’이라고 합니다. 이때에는 지연 시간과 항공기 교체 및 조종사 투입에 필요한 시간 등을 종합 분석하여, 최선의 방법을 선택합니다. 대부분의 연결 편 지연이 수 분에서 수십 분 이내인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몇 시간씩 지연된다면 다른 항공기를 투입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상식적인 결정일 테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이 부분 만큼은 LCC가 FSC에 비해 부족한게 사실입니다. 남는 비행기가 별로 없거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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