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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

by 조경래 기술사

저녁 반찬 삶은 양배추 시중으로 된장 대신 양념장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후에 장을 봐온 녹두나물을 데쳐서 무치고, 달래는 잘게 썰어 양념장에 파를 대신하여 달래장을 만들었는데, 간사하고 미련한 게 사람들이라 그것이 봄의 전령이라도 된 것인 양 마음이 들뜬 채로 저녁을 먹었다

낮에는 늙은 강아지와 계양산 산책을 다녀왔는데, 이래저래 걸음이 만 오천보가 넘도록 걸어 다녔다.

내가 즐겨 찾는 다남동 쪽 계양산 북측 초입은 사유지라고 땅주인이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막혀 있어, 새로 조성된 공원을 들머리로 입산을 했는데, 한적 하리라 생각했던 산길에 등산객들이 치일 정도로 많다.

질척거리는 산길에 초롱이 하얀 털은 순식간에 거지견이 되었는데, 초롱이 나이와 성별을 물어오는 애견인들의 질문에 못 들은 척하고 그냥 걸었다.

마치 이 한적한 산길에 기득권이라도 있었던 듯, 나의 산길에 분주한 사람들이 귀찮았던 생각도 있고, 나이나 성별 같은 시시한 질문 대답해주는 것도 심히 마뜩하지도 않아서, 헤드폰 핑계로 못 들은 척하고 다닌 것이다.

목상동 솔밭에서 아는 이들을 몇 사람 인사하고 나니, 나도 이제 인천 사람이 다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 생각의 뒷맛이 좋지 만은 않다.

이곳 인천에 이사올 때는 언젠가는 또 어디론가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이사온지 10년 넘었고 집도 절마저 이곳에 모두 세팅이 되어있으니, 그 당시 품었었던 떠나야 할.. 언젠가와 어디론가는 훨씬 더 모호해져 있다.

시절 인연으로 우연찮게 내려앉은 곳에 뿌리내릴 흙이 있어서 정착하고, 꽃 피우고 가을에는 아이들을 바람에 실려 보내고 겨울에 눈에 묻히는 민들레 홀씨 같은 삶이 사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니..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인천이면, 또 어떠랴 하는...

살아 있는 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산 생명과 사람들에게 못할 짓 않고, 감옥소 가지 않고, 비싸지 않은 제철 맛난 음식 즐기며 살면 좋고, 아니어도 쌓은 업보이니 할 수 없는 것이고..

이제 입춘이 지났으니, 대길할 차례이니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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