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산 야간 산행

by 조경래 기술사

여기서 먹고 마시는 저녁식사비용은 정확히 n분의 1이다. 누가 뜬금없이 식사자리에 참석하여 몇만원 안 되는 식사비 지불하고 호기 부린다면 여기서는 실례고 민폐이다. 마음 내서 한턱내고자 한다면, 마땅히 낼만한 명분이 있어야 그것을 허락하고, 퀄리티도 좀 높여야 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인천의 만월산, 문학산, 계양산을 돌아가며 야간산행을 하는데, 산행거리로는 짧게는 6km 길게는 10km로 두 시간 남짓 걷게 된다. 산행 후에 추어탕 또는 청국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막걸리도 곁들어 한잔하는데, 아무리 흥이 나더라도 2차 없이 깔끔하게 집에 가는 게 불문율이다. 은영이는 거의 매주 참석을 하고, 나는 야간산행이 끝나고 저녁식사만 합류하는 일이 더 많다.


3개 산중에서 야간산행으로는 인천가족공원을 한 바퀴 도는 만월산 코스를 나는 좋아한다. 도심 한복판의 얕은 산의 능선을 걷자 하면, 능선 왼쪽에는 도시 불빛의 산사람들과 능선 오른쪽은 공동묘지로 죽은 사람들의 영역이 구분되는 능선이다. 죽은 사람들이 주는 귀감과 함께 삶과 죽음의 영역의 경계에서 너무나 무심하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야경이 밝아오는 풍경은 번잡한 가슴속의 무언가를 초월하게 하는 기운이 있다.


오늘은 현장 오후 미팅이 있어, 문학산 저녁식사만 합류하는데, 시간이 남아 식사 장소 주위를 느긋하게 배회를 했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 발걸음이 공원으로 향하게 한다. 이 공원의 상부에는 선학 별빛도서관이 올해 초 완공되어 자리 잡고 있는데, 외관을 분화구의 간지가 살아있는 행성의 모습이 익스테리어 되어있고, 밤 시간 시시각각 그 조명 색이 변하고 있다. 상업용도 아니고 높은 건물도 아니지만, 앞으로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겠다 싶다.


공원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오늘의 식사 장소인 청국장집 노란 간판이 조금 반짝이는 네온 테두리로 훤 하게 밤거리를 비추고 있는데, 조금 촌스럽지만 내가 좋아하는 간판 스타일이다. 대개 이런 간판은 산행이 끝나는 산자락에 기름 냄새나는 부침과 막걸리를 소박하고 인심 좋게 내어주는 그런 식당의 간판에 반가움이 있는 조건반사적 익숙함 때문일 것이다.


본래 이 청국장집은 약 200m 골목으로 들어간 주택가에 있었고 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장사를 했는데, 건물주가 바뀌면서 지난해 이 자리로 옮겨왔다고 했다. 건강하게 늙은 부부가 종업원 없이 운영하는 이 식당은 청국장이 주요 메뉴이지만, 오징어 두루치기나 콩국수나 장르가 다른 여러 요리도 가능하다. 반찬과 음식에는 빛깔이 나고 간이 적절히 잘 맞다. 특히 시래기 무침과 감자조림은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이다.


나이가 들어 목소리가 약간 중성 스러운 할머니는 짧은 머리에 파마와 갈색 염색을 했다. 그 나이 또래에서는 파격이라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손님이 어떤 말을 해도 되받아치는 입담이 있지만, 수틀리면 퍼부을 욕도 준비되어있어 보이고, 소 금한 바가지 뿌릴 강단도 있어 보인다.


일부는 먼저와 앉아 있었지만, 은영이를 포함한 야간산 행객들이 9시 30분을 넘겨 도착했다. 식당 문은 열어놨지만. 9시에 간판 등이 꺼졌는데 그것은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30분을 더 기다려 우리 일행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베푸는 특별한 단골 대접이다.


한잔 막걸리와 안주 겸 저녁식사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람들과 편안한 이야기가 있는 수요일 저녁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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