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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작가 Nov 18. 2021

[5화] 위기의 남자.



문을 열고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코 속으로 훅  들어온다. 옷깃을 부여잡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끝에 힘을 잔뜩 줬다. 마음 속에 쌓인 고민의 크기만큼 주차해놓은 차 위로 눈이 쌓였다. 아침밥을 입으로 우겨넣으며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아빠는 딸을 위해 시동을 켜고 슬리퍼 차림으로 유리창의 눈을 치워주셨다. 


ㅡ운전 조심해라. 오늘같은 날은 그냥 버스타고 가면 좋으련만......
ㅡ아빠, 나 가요.


엑셀을 밟으며 조수석에 놓인 핸드폰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밤사이 내린 눈이 세상의 더러움을 가려주었다. 정리되지 않은 서랍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닫아버린 아이처럼 뭔가 찝찝했다. 

또각 또각 분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밤새 그에게 해야할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뭐라고 해야할까.. 뭐라고 설명해야 덜 상처받을까.. 수없이 되뇌이며 잔인하게 나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 운전하는 내내 나는 그를 생각했다. 마지막 교차로에서 오른쪽 깜박이를 켜고 핸들을 돌리는데 낯익은 실루엣이 보인다. 


'에이.. 설마...'

주차를 하고 들어가려다 뒤를 보니, 나를 향한 시선이 정면으로 꽂혔다. 차가워진 손에 들려진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음성을 음악삼아 들으며 출근 했기에 내 핸드폰은 늘 따뜻했다. 항상 손발이 차가워서 얼음장 같은 나를 녹이기 위한 거라는 그의 썰렁한 농담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나를 때렸다. 전화가 울렸다. 


ㅡ여기서 할래? 잠깐 나갈까?
ㅡ아침 조회만 하고 나올게. 



차에 몸을 싣자, 미끄러지듯 도로로 빠져들자 차는 어딘가를 향해 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 9시, 가까스로 문을 연 카페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이제 막 문을 연 아르바이트생은 흥미로운듯 우리를 쳐다봤다. 평소 같았음 나의 취향을 아는 듯 잘난 척을 하며 주문대로 갔을 그가 그늘진 표정을 지었다. 


ㅡ경미야. 
ㅡ어?
그 때 네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됐을까?
ㅡ언제?
ㅡ처음 만난 날.
ㅡ글쎄... 


ㅡ그래도 우린 여기 있었을 거야.
ㅡ무슨 말이야?
ㅡ너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 건지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 어떤 순간이 와도 나는 네 옆에 있을 거야.
ㅡ사실,,
ㅡ말하지 마. 이제 니가 없으면 나도 안 돼. 이제 정말 안 되겠어. 


나오기 전 이를 악물었다. 독하게 마음 먹고, 빨리 이 남자를 단념시켜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그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ㅡ몇 살에 결혼하고 싶어?
ㅡ뭐? 나 너랑 결혼 안 할 거야. 지금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나온 거잖아.
ㅡ아~니. 그냥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된다면 몇 살에 하고 싶냐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ㅡ음.. 난 서른. 고등학교 다닐 때 다이어리에 결혼은 서른에 하고 싶다고 썼어. 20대에 하기엔 내 청춘이 너무 아깝고, 서른을 넘기면 왠지 노처녀 같아서 그냥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 근데 우리 엄마가 다니는 절에 스님이 그랬는데 서른 전에 결혼하면 오래 못 살고 돌아온다고 했대.



말하고 나서 하도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화제를 전환해 재빨리 불길함을 씻어버린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나는 이미 웃어버린 후였다.  단순한 나의 뇌가 문제였다. 누굴 탓할까. 그가 커피를 들고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손 위로 그의 손이 겹쳐졌다. 따뜻했다. 





>>>>>>>다음 편에 계속.............




[아무튼, 결혼]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해서 어떤 이야기를 엮어볼까 고민하다가 저희 부부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연애소설로 만들어보았습니다. 2년 전에 조금 써둔 원고의 먼지를 털어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고, 올해 완결을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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