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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패'라는 번뇌를 버리다

<인생공식> 양순자

by 정강민

상패 버린 이야기부터 할게. 내가 상패가 좀 많았어. 재소자들 상담하고 사형수들 상담하고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상을 좀 주더라고. 다른 상들은 모르겠고, 국무총리가 준 상도 있었다는 것만 기억나. 일부러 잊었지. 그 상들이 지금 어디 있는 줄 알아? 난지도에 있어. 왜 버렸냐 하면, 내가 그 상패들을 늘 보고 있으면 은근히 우쭐대겠더라고. 그래서 다 챙겨서 서랍에 넣어두긴 했는데, 그걸로는 좀 부족하더라고. 상이라는 게 주는 자리에서 박수 한 번 치고 칭찬해 주고 끝나면 좋은데, 그게 잘 안되더라는 거지. 이래 봬도 내가 이런 상을 탔는데....., 요런 마음이 생기는 거야. 그리고 누가 올 때마다 그 무거운 것들을 꺼내서 은근히 보여주고 싶어지는 거라.


'야, 이것이 나를 번뇌케 하는구나, 이놈의 상패가....'


그래서 몽땅 싸가지고 난지도에 갖다 버렸지. 나를 불편하게 하니까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니지. 그래서 버린 거야. 한 십몇 년 됐지 싶은데, 그때는 난지도에 한창 쓰레기를 갖다 버릴 때였어. 굳이 난지도까지 가서 버린 건 다른 쓰레기 더미 속에 확 묻혀버리라고 그랬어. 동네에다가 버리면 혹시 사람들이 상패 주인이 누군지 알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번뇌거리' 하나를 갖다 버린 거야.

-<인생공식> 양순자


자신의 자랑거리를 알리고 싶은 본능, 그것이 번뇌라고 느끼는 저자가 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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