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
'인간이 대상을 인식해야 비로소 대상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칸트의 이야기다. 인간이 인식함으로써 대상에서 드러나는 그 모습이 바로 '현상'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현상계뿐이다. '이데아를 찾아 헤맬 게 아니라, 현상계에서 진리에 다가가려 노력하면 돼.' 이런 사고방식은 '현상학'으로 이어진다.
에드문트 후설이 현상학의 조류를 만들었다. 후설이 제안한 것은, 사물을 기존의 믿음으로 판단하지 말고, 현상 그 자체를 꼼꼼하게 기술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것들이 사과다.'라고 굳게 믿지만, 그 생각을 일단 머릿속에서 지우고 사과의 모습을 꼼꼼하게 기술해 보면 이 사과와 저 사과가 전혀 다른 사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기술된 내용을 본다면 100개의 사과 중에서도 그 사과를 "이거다!" 하고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현상학적 기술이다.
생각해 보면 화가가 하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개념적인 사과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자세히 뜯어보면서 붓질로 하나하나 그려간다. 관찰을 통해서 존재 자체를 그려내려는 행위는 현상학적 기술과 같다.
당신이 인식해야 세상은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그 인식하는 대상은 퉁치는 개념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구체적 모습이어야 한다. 눈앞에 있는 하나의 사과를 인식하면서 옆 사람과 내가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할 수 없다. 분명 그 사과의 색깔, 모양, 냄새까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