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의 증거
목이 칼칼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살짝 따끔거렸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컨디션이 서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평소라면 공부에 도움 되는 영상을 틀어놓고 귀를 기울였겠지만, 이날만큼은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야구 영상, 우스운 쇼츠들을 아무 의미 없이 넘겨보기만 했다.
배는 고팠다. 찬밥뿐이었다. 이럴 때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해결책은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다. 맵싸한 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밥 한술과 함께 입에 넣으면, 순식간에 허기는 사라진다. 문제는 물 말아 먹을 때 밥을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허겁지겁 배를 채운 뒤, 식곤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목 안이 부어 컨디션이 나쁜 와중에 허기를 채우겠다고 급히 많은 양을 먹었으니, 졸음이 오는 게 당연했다.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세가 불편했지만 그것조차 고치기 귀찮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졸음에 젖은 채 30분 넘게 흐느적이다가, 마지못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칫솔질만 겨우 했다. 샤워할 힘은 없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낯선 감각이 있었다. 잠결에 '아프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 부위는 분명 인후였다. 침을 삼킬 수 없어 입안에 침이 고이고, 꿈결 속에서도 조심조심 침을 넘기고 있는 나를 느꼈다. '이렇게 아프면 내일 아침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는걸.'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지난 한 달은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고, 또 원고를 넘기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연휴에는 장시간 운전도 했고, 요즘은 나이 탓인지 수면량도 확 줄었다. 더 자고 싶어도 아침이면 눈이 떠졌다. '충분히 자야 하는........' 하는 걱정이 마음 한켠을 맴돌았다.
이 몸살은 내가 일정 기간 동안 얼마나 집중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래서인지 아픈 게 꼭 싫지만은 않다. 지금도 머리는 욱신거리고 손가락 뼈 마디마디가 저릿하며 아프다. 하지만 이 아픔이 헛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은 오히려 평온하다. 육체는 고단하지만 정신은 어느 정도 위로받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점도 있다. 억지로라도 누우려고 일찍 잠자리에 드니 거울 속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맑아 보였다는 것. 아픈 김에 얻은 작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