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존재한다.

쇼펜하우어

by 정강민

"세계는 비참한 사람에게 있어서만 비참하고, 공허한 사람에게 있어서만 공허하다." - 쇼펜하우어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마치 불교의 법공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식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곧 우리의 마음이며, 그래서 각자는 자신만의 우주를 살아간다.


가령 우리 앞에 사과 하나가 놓여 있다고 해보자. 그 사과는 내가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존재한다. 내가 인식하는 사과는 내 마음의 거울이며, 나만의 사과다. 나는 그 사과를 선명한 붉은빛으로 본다. 하지만 옆 사람은 그것을 옅은 붉은색이라 느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는 붉은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졌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 사과라는 어떤 객관적 실체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옆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가 사과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방법은 없다. 그의 눈에 비친 사과는, 내가 보는 그것과 전혀 다른 사과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식체계, 자신의 감정과 기억, 고유한 세계관 속에서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을 비참하게 보는 사람에게는 그 세계가 비참하게 다가오고, 공허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 세계가 끝없이 공허하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우주 속을 걷고 있으며, 그 우주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간다. 바로 이것이 법공이다.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인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곧 우리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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