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규율, 깨달음의 관문

by 정강민

뜨겁게 달아올랐던 여름이 물러가고, 강변에는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아침이면 옅은 물안개가 강 위를 덮어 조용히 일렁이고, 버드나무 가지는 유연하게 흔들리며 강물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J와 빛은 천천히 걷다 벤치에 앉았다.

J가 빛을 쳐다보며 말한다.

“많은 사람 마음속에는 따르고 싶은 영웅이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찾는 영웅의 수준도 높아지는 것 같아.”

빛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지. 영웅이라는 건 결국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원칙과 미덕을 한 몸에 지닌 존재니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엇을 하기 전에 나보다 훨씬 훌륭한 누군가의 전례를 떠올리고 따라가려 하지.”


J는 잠시 벤치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허리를 잡으며 말한다.

“위인과 범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뭐야?”

빛도 잠깐 일어나 먼 강변을 바라보며.

“자신을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느냐지. 평범한 이들은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의 자아를 이끌 리더도 될 수 없어.”

빛이 말을 이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능력을 지혜롭게 쓰지도 못하고,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지도 못해. 심지어 단순한 자기 계발조차도 힘들지. 결국 자립할 수도 없게 돼.”

J는 멀리 산등성이 위로 흘러내리는 구름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선을 행하고 싶어 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갈망이 있는 걸까?”

빛이 잠시 생각한 뒤.......,

“깨달음에 대한 갈망이지. 혼탁한 세상에서 올바로 나아갈 수 있는, 아니 그냥 서 있을 수라도 있는 길은 단 하나야.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규율을 세우는 것이야. 이게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로잡는 유일한 길이야. 자기 규율이라는 과제를 외면하면 언젠가는 강제로라도 직면해야 할 때가 와. 우리가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자기 규율을 지키지 못해서 생긴 거야.”

J는 다시 물었다.

“왜 규율을 세울 수 없는 거지? 나도 세우고 싶은데.”

빛이 말한다.

“자기 앞에 떨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해. 이것을 해결해 본 적이 없기에 계속 헤매는 거지. 자기를 다스릴 줄 알아야 좋은 카르마도 만들어낼 수 있지.”

J는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결국 자기 규율과 동시에 행동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천국이나 극락에 이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야?”

빛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맞아. 의지와 동기가 있어야 행동이 나오고, 그 행동이 삶을 바꾸지. 지식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삶 속에서 지혜로 변환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야. 통찰을 공덕으로 전환시킬 때 많은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리지.”


낮의 햇살은 아직 따스했으나, 저녁이 되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긴 여름의 열기를 말끔히 거두었다. 강둑에는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곳곳에서 풀벌레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채웠다.

J는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공덕이라...... 불교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지?”

빛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말한다.

“공덕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야. 신념을 증명하는 행동이지. 내가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을 실제로 행하고 성취하는 것. 공덕은 결점을 지워가는 힘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공덕을 쌓을 때마다 통찰력은 깊어지고 시야는 넓어져.”

빛이 말을 이었다.

“공덕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최선이 아닌 것은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자기 검열의 일부야.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늘 자신과 타인에게 가장 좋은 것을 택하지. 이런 신념이 정착되면 삶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시작하지. 이번 생이 아니면 최소한 다음 생에서는 해결되지. 이런 신념으로 하는 행동이 인격을 개발하는 거야.”

J도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결국은 우주 법칙 안에서 돌아가는 거겠지?”

“그렇지. 인간은 우주적 절차에 의해 태어난 존재야. 우주는 모든 원인을 알고 있지만 인간은 모를 수도 있어. 그 절차는 필연적이고 보편적이야. 저항해 봐야 소용없지. 우주의 법칙을 따라야만, 우리가 원하는 행복과 평온을 얻어. 이런 것은 순응 속에서만 얻어져.”

J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과학은 그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겠네?”

빛이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론이지. 과학은 우주의 법칙을 측정하고, 관찰하고, 설명할 수 있어. 거기서 인간과 우주의 관계까지 규명할 수 있지. 중요한 건 과학이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우주 법칙이라는 보편성 속에서 통합하는 데 기여하는 거야.”


J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과학자들이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이유구나!”

휴~ 하며 빛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런데 가끔 과학이 선과 악을 판정하는 경우도 많아. 세상을 발전시킨 것은 과학이고, 그래서 대중들은 과학이 하는 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문제는 과학은 인간의 마음 작용을 연구하는 분야가 아니란 거야. 이걸 가장 깊이 연구하는 곳은 영성, 종교, 철학이지. 물론 이런 분야에서도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평가하고 최후의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주체는 자연과 우주의 법칙뿐이야. 이걸 대신해서 현행 법체계가 있는데, 이 법체계를 만든 것도 너무도 불완전한 인간들이기에 허점이 너무나 많지.” 빛은 긴 한숨을 쉬었다.

J는 앉아서 서 있는 빛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우주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 이게 무슨 의미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 거지?”

빛이 말을 이었다.

“우주에 순응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깊은 생각, 자신만을 위한 사리사욕을 떨쳐내고 타인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 라는 생각에서 건져낸 그것들을 따르는 거야. 한마디로 양심과 상식을 따르는 것이지.”

“세상사를 이익 대신 우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카르마의 짐도 조금씩 줄어들어. 인간은 성장하면서 우주의 법을 인지해. 그러고 나면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는 충동이 내면에서 생겨나지. 또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지.” 빛이 말을 이었다. “성장하고 싶다는 욕망도 강해져. 그래야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거든. 그게 깨달음이야.”


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J가 말한다.

“나에게 닥친 상황을 해결하려면 자기 규율을 확립하고 양심적, 상식적으로 실천을 통해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거네.”

빛이 J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와, 너 정말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어. 결국 지혜란 진리를 발견하는 거야. 자신을 우주의 섭리에 맞추는 것이 자기 규율이지. 문제를 피해서는 해결할 수 없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보다 더 크게 성장하는 거야. 그래야 뛰어넘을 수 있지. 문제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감당하는 거지.”


J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법을 알았으면, 따를 책임도 생기는 거네.”
빛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주 법칙을 준수하면 행복이 쌓이고, 깨면 불행이 쌓여. 그것이 단순하면서도 변함없는 진리야.”

J와 빛은 강변 너머 어스름 속으로 사라져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맑아진 강물은 하늘빛을 고스란히 비추었고, 저녁 노을은 은빛 물결 위에 잔잔히 번졌다. 여름의 뜨거운 기운은 사라지고, 강변에는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만이 길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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