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가에서 마주한 깨달음
강변은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람에 흩날린 갈대는 황금빛으로 반짝였고, 강 옆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붉고 노란 단풍잎을 떨구었다.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구름 그림자가 천천히 흘러가고, 강물은 단풍빛을 받아 붉은 비단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J와 빛은 강둑에 놓인 오래된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코스모스와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져 공기 속에 선율처럼 번졌다.
J가 단풍잎 하나를 주워 들며 말했다.
“빛, 우리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게 하나 있더라. 한 번 제대로 해결한 문제는 다시는 문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
빛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물에 시선을 두었다.
“그래. 같은 상황이 또 찾아올 수는 있지만, 해결책을 알면 더 이상 문제라고 부를 수 없어. 예전처럼 혼란스럽게 우왕좌왕하지도 않고. 결국 그 문제로부터는 영원히 자유로워지는 거야. 한때 어렵게 느껴졌던 그 과제를 정복했기에 더는 자신을 괴롭힐 수 없는 것이지. 그건 이번 생에서만이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마찬가지야. 해결책이 의식 속에 새겨지면 잠재의식에서 꺼내 쓸 수 있거든.”
잠시 강변에 바람이 불어 단풍잎이 우수수 쏟아졌다. J가 웃으며 잎사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말했다.
“그러니까 문제를 만났을 땐 끙끙대며 버티는 게 아니라, 실력자와 게임을 한다는 태도로 임해야겠네. 결국 가장 힘들어 보이는 문제가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지?”
빛이 잔잔히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지. 힘든 건 상대가 고수라는 뜻이야. 그 문제는 네 안에 있는 힘을 끌어내도록 시험하는 거지. 상대라는 놈의 정체는 네 내면의 약점일 수도 있고, 환경적 압박일 수도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는 거야.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성장에 있어. 해결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물론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제에 자꾸 감정적으로 대응하려는 내 모습부터 알아차리고 다스려야 해.”
J는 잠시 말이 없었다. 바람에 날려온 갈잎이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J가 손끝으로 그것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근데 빛, 사람들의 문제 대처 방식은 참 다양한 것 같아. 어떤 사람은 문제를 모른 척하며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곧장 전문가에게 달려가고, 또 어떤 사람은 작은 문제에도 질식하듯 허덕이지. 허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고, 아예 눈앞에 있는 걸 못 본 척하는 이들도 많고.”
빛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자기 규율이 필요한 거지. 그래야 흔들리는 감정을 안정시켜.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지. 인내심과 공감도 배워야 하고. 자기 규율 없이는 문제를 다스릴 수 없어. 잘못된 선택은 단순히 카르마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연쇄반응을 일으켜. 어떤 사람은 그 한 번의 실수 때문에 평생 우울 속에 살기도 해.”
강물 위로 저녁 햇살이 붉게 번져갔다. J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겪는 시련이 전생의 카르마 때문인지, 이번 생의 잘못 때문인지는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빛이 잠시 눈을 감고 바람결을 느끼다 천천히 대답했다.
“진짜로 전생의 카르마를 갚느라 고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생에서 잘못 내린 결정과 행위 때문에 끔찍한 현실이 찾아오는 사례도 많아. 근데 사실 구분이 꼭 중요한 건 아니야. 전생의 짐이든 이번 생의 실수든, 지금 네가 올바른 선택을 하면 카르마의 짐은 줄어들어. 문제는 우리가 현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전생 탓, 부모 탓으로 돌리며 위안 삼는 데 있어. 불타는 집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지. 현재의 잘못을 인정하고 즉시 바른 생각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 그게 유일한 길이야.”
J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물었다.
“결국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성장에 있는 거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성장이지? 성장 없이는 자유도 없고.”
빛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문제보다 더 크게 성장해야 문제를 넘을 수 있어. 문제를 피하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거지.”
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저녁노을이 강 위에 드리우는 붉은빛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하늘빛과 단풍의 색을 고스란히 품으며 흘러갔다. 가을의 강변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우주의 법칙은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