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겠다. 물론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모를 것도 없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니까.
-쇼펜하우어
인간은 평생토록 세계를 경험한다고 믿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되비추는 거울 속을 거닐 뿐인지도 모른다. 같은 풍경 앞에 서 있어도 누구는 그리움을 보고, 누구는 두려움을 본다. 바다는 모두에게 푸르지만, 그 푸름의 깊이는 각자의 기억만큼 다르다.
설령 인류가 우주의 끝을 넘어 전혀 새로운 은하에 도달한다 해도, 그 장엄한 빛을 해석하는 눈은 여전히 자신의 시간 속에서 길러진 눈이다. 낯선 별빛조차도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기쁨, 익숙한 언어와 감정의 틀에 기대어 이해한다. 결국 인간은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통과해 드러나는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모를 것이 없다고 말하는 역설은 성립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타자와 모든 우주는, 끝내 우리 안에서 번역되고 재구성된 또 하나의 ‘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