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을 지르고 싶다!
비명을 질러라!
무서운 영화에서 비명이 가끔 나온다. 현실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다. 맞은 편 아파트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 비명 같은 고함 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은 있다.
코로나 3단계가 되면 비명을 지를 것 같다. 최소 39명이 모여야 성립하는 중요한 총회가 있다. 근데 3단계는 10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 시시각각 인터넷 뉴스를 확인한다. ‘3단계 논의 중’이라는 기사가 많다. 제발 토요일까지는 2단계로 있어줘! 내일 확진자가 200명 대로 내려가면 3단계 발동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ㅜㅜ
아마 오늘도 비명을 지르고 싶은 분들은 있을 거다.
코로나로 약속이 취소되거나, 중요한 강의가 취소되거나, 손님이 거의 없거나, 매출이 나오지 않아, 상사의 똘아이 같은 행태 때문에, 부하직원이 말귀를 못 알아 들어,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수많은 상황에서 우린 비명을 지르고 싶다. 하지만 우린 참는다. 지르게 되면 그 상황이 진짜로 확정되기 때문이고, 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때, 답답함이 극에 달할 때 고함을 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야이~ 이런 개**야~~~~~~~~~, 시**아~~~~~~~~~~’
4~5초 이러고 나면 좀 낫다.
‘강민아 너 왜 그래? 미쳤냐?’ ‘이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잖아!’
이렇게 하면 아무도 없는 공간에 소리를 지른 것에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 때도 있다.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은 말한다. 우리 몸은 순환이 필요하고 매듭도 필요하다. 한 번의 비명을 지르면서 기가 순환될 때도 있고, 그 상황이 매듭지어질 때도 있다. 기의 흐름으로 볼 때도 가슴 등에 머물러 있던 답답함이 비명을 통해 분산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시원한가 보다.
요즘은 소리 칠 기회가 없다. 소리 지를 만한 곳도 없다. 노래방 정도인데........, 코로나로 가기 어렵다. 소리 지를 곳을 찾아야겠다. 막혔던 기의 흐름을 풀어줘야겠다.
진짜 노래방 가서 비명 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