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허물이 자신을 괴롭힌다.

by 정강민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옆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장한 엿장수였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법정스님 <무소유> p 82. 인용


법정스님이 평생을 두고 이 일을 후회하고 자책하셨다고 한다.

물론 법정스님의 이 글은 1971년에 작성된 글이기에, 그 이후 돌아가시기(2010년 3월)전까지 또 다른 후회스런 일화가 있을 수도 있다.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자신을 더 괴롭힌다며 고백한다. 자신보다 약간 사람을 괴롭힌 건 인간의 선의지에 반하는 행동인 건 분명하다.

보통 사람은 억지로 기억을 소멸시키거나, 또는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아주 행복할 거다, 그 사람은 강한 사람이었을 거다............, 등으로 스스로 위안할 것이다.


내가 당한 기억, 또 내가 누군가를 괴롭힌 기억이.........., 한 참을 생각하니 떠오른다. 참회의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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