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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리가 하나 밖에 없었다.

인간의 경향은 훈련으로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확고하지는 않다

by 정강민

뭔가를 이뤄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목표를 두고 달리다보면 힘들 때가 온다. 그때 두 가지이 반응이 생긴다. 뭔가를 이뤄내지 못한 사람은 울기만 하고, 이뤄낸 사람은 울면서도 꾸역꾸역 그것을 한다는 것이다. 아침, 수영장으로 출발하려 할 때 속이 불편했다. 빈속에 영양제를 먹어서 그런지 속이 메슥거렸다. ‘오늘 수영장에 가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오늘 다행히 후자를 택했다.


오늘은 자유수영.

출발은 언제나 잠수로 한다. 며칠 전에 배운 ‘음파호흡법’과 물을 누르듯이 하라는 발차기를 실행하며 가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멈추어야 했다. 아직 호흡이 자연스럽지 않고, 또 25m를 한 번에 갈 체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려는데 옆 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좀 많이 놀랐다.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이 수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영복 차림이라 적나라하게 하나의 다리만 보이는 것도 나한테는 충격이었고, 그런데 그 분이 수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는 모습 또한 신선했다.


너무 놀라운 표정이나 주시하는 행위는 그에게 실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영하는 중간 중간 힐끔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팔에는 문신이 있었고, 상체가 발달해 씨름선수 같았다. 상급레인에서 하나의 다리로 킥을 차며 접영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레인 뒤편에는 그의 것으로 보이는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다리 하나를 잃고 수영을 배운 것인지, 수영을 원래 잘했는데 사고로 다리를 잃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타인의 시선으로 괴로웠을 텐데, 잘 이겨내고 수영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보였다. 그는 자유형, 배영, 접영을 일반인처럼 했다. 단지 평영을 할 때 자유형 발차기를 하는 것만 달랐다.


주인이 다리를 부러뜨려 평생 절뚝거리며 장애자로 살았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병은 몸의 장애가 될 수 있어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이상 마음의 장애는 될 수 없습니다. 절뚝거림은 다리의 장애일 뿐 사람의 의지까지 장애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만사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습니다.”


인간의 경향은 훈련으로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확고하지는 않다.”는 세네카의 말을 외다리 수영인을 눈앞에서 직접 보면서 실감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자유를 구하려면 훈련해야 하고,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자기이해와 탄력성, 욕구불만을 극복하기 위한 인내력, 문제 해결력 등과 같은 능력을 계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단 하나의 방법일 때가 많다고 스토아철학은 말한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움직임 뒤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외다리 수영인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수영하겠지만, 수영이라는 움직임이 행복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여러 시선을 극복하고 수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집에서 끓여 온 보온병의 뜨거운 커피가 입천장에 접촉하면서 나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지만, 수영이라는 움직임이 한 겨울 아침에 내가 이렇게 외칠 수 있게 한다. ‘와~ 시원하다. 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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