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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ug 14. 2020

너 자신이 돼라!

- 타인의 기준 때문에 '나의 것'를 버리지 말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전하던 중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 말을 인용했지요. 그가 쓴 책에 실려 있었다고 하더군요. 다른 데에서 들었다면 어쩌면 그냥 흘려들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감독상에 빛나는 봉 감독의 인용이어서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헤아려보고 나서, 뒤이어 후회와 깨달음이 밀려왔습니다.  


제게는 '너 자신이 돼라'는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너의 가장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탐구하고 이야기하라'는 메시지 같았지요. 그런 시선으로 제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좀 안쓰러웠습니다. 제 지난 시절은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며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을 숨기거나 억누르고 살았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난 방화는 안 봐.'


중고생 때 저는 방화(한국영화를 그땐 방화라고 했지요.)를 좋아했습니다. 김혜수 씨가 아주 어렸을 때 출연했던 '내 사랑 돈키호테'를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에서 혼자 관람하고 울면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임권택 감독님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도 아주 재미있게 봤고요. 그때가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요. 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은 입을 모아 제가 좋아했던 '방화'에 대해 그렇게 말했던 겁니다. 자신은 방화는 안 본다고요. 이유는 '구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마치 방화를 좋아하는 네가 구리다, 그렇게 들렸습니다. 그 뒤로 '방화'에서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음악 취향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뒤늦게 듣기 시작한 팝 음악이 좋았습니다. 특히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지요. '스릴러' 앨범을 내놓고 마이클 잭슨이 전 세계를 휩쓸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형들이나 좀 놀았던 친구들은 그건 '애들이 듣는 음악'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헤비메탈 음악이 진짜라며 '똥폼'을 잡곤 했었지요. 저는 본 조비나 데프 레퍼드 같은 헤비메탈보다는 조금 더 팝스러운 밴드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그들을 싸잡아 저급하게 취급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게 편협한 의견이었고, 그들 중 대다수가 '나이 들수록 트로트가 좋네'하며 스스로 취향을 바꿨으니가요. 그러나 그때는 마치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제 낮은 수준을 드러내는 것 같아 억지로 헤비메탈 음악을 찾아들었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지요.  


그런 뒤로 한참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문화의 흐름은 180도 바뀌었지요. 그간 억눌렸던 것들이 화려하게 돌아왔습니다. 아마 지금 '나는 방화는 안 봐'라고 하며 우리 영화는 건너뛰고 외국 영화만 보는 이가 있다면 좀 과장해서 인생의 재미 반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콘텐츠를 즐기고 있으니까요.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화룡점정'에 해당할 겁니다. 또 마이클 잭슨은 지금 레전드가 됐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이 듣던 헤비메탈 음악은 물론 훌륭한 음악이지만, 그 위세는 예전만 못합니다. 그 친구들이 '계집애들이나 듣는 음악'으로 비하했던 건즈 앤 로지즈는 어느새 레전드로 취급받고 있더군요. 


상관없습니다. 취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달라야 하구요. 안타까운 건 그 옛날, 저는 다른 사람의 취향을 좇아 제 것을 버렸었다는 겁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고 변형하며 즐기고 했다면, 아주 개성적인 제 나름의 취향을 갖고 즐겁게 문화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훨씬 더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고 흥미로운 책을 낼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한 마흔부터 달라졌던 것 같네요. 취향이 다른 것을 격이 다른 것으로 간주하는 주변인들 앞에서는 입을 닫았습니다. 그들의 놀림과 탄압(?)을 피해 나는 내 취향을 숨기고 혼자 즐기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논박하며 토론을 하기에는 내 역량도 열정도 시간도 모자랍니다.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 제 앞에서 침 튀기며 설명하지 않더군요. 저도 뭐 굳이 제 취향과 기호를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고요.  


세상의 변화도 그런 저를 도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어설픈 지식과 화려한 '말빨'로 친구들 사이에서 대세를 만들었던 이들의 영향력은 거의 제로베이스로 떨어졌습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드는 이들의 말에 정말 많은 오류와 억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휴대폰으로 네이버를 검색하는 1-2분이면 충분했습니다. 대신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 납니다.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정보력과 '글빨'로 무장한 그분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면 됩니다. 시절이 바뀐 겁니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과 무엇이 아쉬워서 이야기하겠습니까. 


살아보니 문화에 우열이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트로트를 그토록 비판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요즘 트로트에 빠져있다. 왜색 가요라고 멸시하고 싼 티 난다고 경멸했었던 트로트였지요. 천박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배척하려 했었습니다. 지금은 채널을 돌리면 나오는 게 트로트입니다. 


중요한 건 어떤 문화 혹은 문화 상품이 우월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에 대한 깊이인 것 같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것을 통해 가장 세계적인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충분히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향유해서 거기서 자신만의 깊이를 만드는 일일 겁니다. 그 끝에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보편성이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마틴 스콜세지도, 봉준호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은 일찍 깨닫는 걸 저는 참 오랜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즐겁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을 하나 하나 파고들어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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