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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ug 18. 2020

사람들은 다른 이의 '등'을 보고 배운다

- 진정한 충고에 대하여

술자리에서 조금만 취하면 누구나 말이 많아집니다.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요.  


첫 번째는 자랑입니다. 직장생활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듯해서 듣다보면 회사에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를 넌지시 자랑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이 성적에 대해 걱정하는 듯해서 들어보면 다른 과목은 모두 1등급인데 음악 점수가 안 좋답니다. 요즘 살기 너무 힘들대서 들어보면 세금을 너무 많이 떼어간답니다. 듣다보면 돈을 많이 번다는 자랑입니다. 듣기 피곤합니다. 


두 번째는 한탄입니다. 술이 약간 들어가면 세상에 대한 한탄, 가족에 대한 한탄, 회사에 대한 한탄 등이 짜증과 버무려져서 쏟아집니다. 더 잘 나가고 싶은 욕망과 생각만큼 안 풀리는 현실의 괴리 때문에 생기는 속앓이를 풀어내는 것입니다. 퇴근 후 소주 한 잔은 이렇게라도 마음에 남아있는 잔여물들을 풀어내고 싶어서인가 봅니다. 이것도 듣기 힘들지만, 짠한 마음이 듭니다.  


세 번째는 충고와 가르침입니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나오는 이 충고와 가르침은 약간 고약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살면서 축적한 온갖 종류의 개똥철학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엄청 오랜 시간 지속되는데, 그 충고와 가르침은 주로 제일 잘 들어주는 타깃 한 사람에게 쏟아집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딴짓을 하거나 피해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고문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한턱 쏘게 하면 됩니다. 저는 술자리에서 가장 자기 자랑을 많이 하거나, 많이 떠든 사람이 술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도둑질보다 나쁘다는 자기 자랑'을 주야장천 떠들어대면 술값이라도 내야 하는 게 이치에 맞지요. 


또 한탄하는 사람은 들어줘야 합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니까요.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니 이별을 하거나 갈등 상황에 있는 사람은 1분에 따귀 30대를 맞는 고통과 맞먹는 아픔을 겪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잘 보듬어 줘야 하겠지요. 물론 습관성 한탄은 사양이지만요.  


문제는 충고하는 사람들인데요. 주로 연장자이거나 상급자인 경우가 많아서 참 처신하기 힘듭니다. 이건 연장자나 상급자가 깨닫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충고를 안 들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을 꽤 봅니다. 저는 의아합니다. 세상 도처에 충고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안 들을리가요. 그들은 듣고 싶은 사람에게 들을 뿐입니다. 진짜 성공했거나, 정말 전문성이 뛰어나거나, 무척 따뜻해서 얼굴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충고를 듣고 배울 뿐이지요. 필요하면 강연료까지  지급해가면서요. 


언젠가부터 저는 그 누구를 만나든 제게 요청하기 전에는 충고나 조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중요하고 요긴한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건 듣기 싫은 잔소리이고 고약한 시간 낭비이거든요. 게다가 요즘은 점점 세상의 정답 없음을 깨닫고 있거든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타인의 부정적인 예상을 깨고 우뚝 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던가요. 


대신 제가 꼭 충고나 조언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 특히 제 아이들에게는 말 대신 행동과 실천, 그리고 그 결과로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지요. 그걸 저는 '등으로 가르친다'라고 표현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입을 보고 배우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등을 보고 배울 뿐이지요. 설사 지금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등은 오래오래 기억될 겁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제 등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의 등에 제 충고와 가르침을 담으려 합니다. 아버지의 등이 기억나는 아이들이 언젠가 조금 더 구체적인 조언을 바랄 때,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람으로 쓰고 있는 것이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조언으로 제 삶이 바뀐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를 크게 배운 적도 없는 듯해요. 그러나 제가 대단하다고 느꼈던 사람들,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행동과 습관, 그들의 원칙 등에서 배운 것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당신들의 등을 보며 인생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등에는 우리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훨씬 많은 것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등으로 충고하세요. 

언젠가 그 등에서 위로와 충고와 조언을 얻은 이들이 당신에게 고백할 겁니다. 고마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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