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젊었을 때는 친구든 선배든 직장동료든 상사든 선생님이든, 되도록 모든 사람들과 친밀하고 싶어 했던 것 같네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처음에는 냉랭하게 대해도 내가 다가가면 마음의 문을 열겠지, 그리고 친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지요.
물론 나이가 든 지금도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대하면 상대방도 나를 대하는 마음과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뭐 이런 거요. 하지만 모두에게 할 수 있다는 무모한 생각은 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돌아보면 참 딱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젊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습니다. 살아보니 만나는 횟수에 따라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험도 하게 되고, 서로에게 기울이는 노력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관계를 오래 지속하다 마음 상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저를 미워하는 사람도 만나봤고요. 돌이켜보면 조직 내에서의 지위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경험을 하다 보니, 관계를 유지하는데 따르는 심리적 경제관념이 생겼다고 할까요. 모든 사람은 소중하지만 모든 관계가 소중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너무 타인에게 잘하려다가 자기 자신에게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지금은 관계마다 흘러가는 대로 응하려고 합니다. 저를 아껴주는 이에게는 그만큼의 관심을, 덤덤한 사람에게는 덤덤하게, 냉담한 사람에게는 관심을 끕니다. 너무 잘하려고도, 너무 차가우려고도 하지 않지요. 함께 밥을 먹거나 모임에서 만났을 때 몇 번의 스몰 토크를 시도해도 단답으로 대답이 돌아오면 뭐 그것으로 된 겁니다. 그때부터는 저 역시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요. 예의만 지킬 뿐입니다.
모든 관계는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제게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고 충족된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한 에너지더군요.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나눠 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아, 그리고 사랑과 인정은 안타깝게도 내가 상대방에게 기울인 마음 씀씀이보다는 상대방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더군요. 인맥을 만들고 싶어도 나 스스로의 가치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귀찮아하거나 이용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럴 뿐이지요. 입장을 바꿔서 상상해보면 그럴 만하더군요.
그러니 차라리 그런 관계에 쏟을 에너지를 제 자신의 성장을 위해 쓰는 게 맞겠다 싶었습니다. 높은 봉우리는 넓지 않아서 그곳에서는 원하는 이들을 다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