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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Oct 06. 2020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 문득 지나간 날이 그리워질 때


난 내가 말이야/스무 살쯤엔/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어릴 땐 말이야/모든 게 다/간단하다 믿었지/이제 나는/딸기향 해열제 같은/환상적인 해결책이/필요해/징그러운 일상에/불을 지르고/어디론가 도망갈까

찬란하게 빛나던/내 모습은/어디로 날아갔을까/어느 별로/작은 일에도/날 설레게 했던/내 안의 그 무언가는/어느 별에 묻혔나


저는 종종 유튜브 알고리즘에게 기습을 당합니다. 오늘도 이 알고리즘이란 녀석이 심장 한 켠으로 이 노래를 훅, 밀어 넣었지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피데이>>를 부르는 체리필터의 영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플레이했는데, 예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가 아닌 거예요. 제가 기억하는 체리필터 조유진 씨의 목소리는 마치 엄마에게 반항하다 마음 고쳐먹은 깻잎머리 노는 언니(?)의 카랑카랑하되 고음에서는 맑고 시원했던, 그런 목소리였는데 동영상 속의 목소리는 좀 달랐습니다. 어디 맥주축제에서 초대되어 간 무대였는데, 그런 무대 자체가 갖는 음향적 한계도 분명히 한몫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어딘가가 부조화스러웠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노래를 부른 때가 2019년 여름이더군요. 거의 십 수년 전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제게 최근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아직도 활동하는구나, 하는 반가움과 함께 제 마음속에 이상한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이 가사 때문이었지요. 이 그룹은 대학원 다닐 때 후배가 소개해 주었습니다. 1집을 듣고는 흠, 목소리가 괜찮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는데, 그 뒤에 <낭만 고양이>를 듣고는 한동안 체리필터 2집만 듣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저는 아마도 제 무의식이 대학원 시절을 '찬란하게 빛나던' 제 모습이라고 여긴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체리필터 조유진 씨의 목소리는 그런데 올드스쿨 가수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그냥 제 느낌이지만 찬란한 슬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온몸에서 젊을 때와 똑같이 에너지는 끓어오르는데 발성기관이 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새라고나 할까요.  


요즘 종종 옛날이 그리웠습니다. 돌아보면 후회 투성이였던 청춘인데, 다시 돌아가면 멋지게 살 것 같지 않은데, 수많은 행운 덕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는데, 그런데도 자꾸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예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인생의 종착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이 목소리를 만나게 된 거죠. 그 목소리가 제 귀에 대고 말합니다. 성대가 망가지고 온 몸이 녹아 흘러내리더라도 나는 이 에너지를 뿜어내고 말 거야. 그게 록이고 그게 인생이야. 늙어빠진 개처럼 관습적인 인생의 규칙에 무너져 내리지 말란 말이야. 일어나. 뛰어. 폐가 망가질 때까지,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몸 안의 모든 역겨운 것들을 토악질할 때까지.  


마음속 추억의 책장을 덮었습니다. 이제 한동안 펼쳐보지 않으려 합니다. 다시 산을 오르다가 땀을 닦으려 바위에 걸터앉아 쉴 때, 그때 또 잠깐 곁눈질할 생각입니다. 


다시, 갑니다.  


p.s. 최근에 체리필터가 랜선 콘서트를 한 것 같습니다. 최신 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는데, 고맙게도 목소리가 옛날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찬란한 슬픔이 원숙한 기쁨으로 바뀌었지요. 부디 오래오래 극강의 돌고래 소리를 유지해 제2의 전성기를 맞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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