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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Oct 08. 2020

'잡스형', 사람들이 왜 이래?

- 취미 파괴 빌런에 대하여

마흔 줄을 넘어서면서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습니다. 이십 대에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일종의 '분풀이' 같은 심리가 아닐까 진단한 적이 있었지요. 조금 지나면 일시적인 관심은 떠내려가고 진짜만 남을 것이라 생각했었지요. 정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까 제가 좋아하고 여건이 맞는 것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가 저만 그런 건 아닌 듯했어요.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취미들이 넘실거립니다. 어? 이 친구가 그림을 그리네? 와, 얘가 종이접기 마니아였구나. 흠, 이번에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군. 이런 구경을 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다들 비슷하게 목말라 있구나 했습니다. 


그런 반면에 '취미 파괴 빌런'들도 간혹 만나게 됩니다. 제가 영어공부하는 것을 보고(몇십 년간 공부해도 늘 실력이 그대로인 게 제가 봐도 신기하긴 합니다.) '야, 영어는 젊을 때 공부해야지. 지금 배워서 어디에 써?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는데.'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만나면 맥이 풀립니다. 


주변의 친한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 중에 이런 빌런들이 많습니다. 


'지금 그거 배워봐야 그거 필요한 회사에서는 널 써주지도 않아.'

'차라리 그 시간에 술을 한 잔 더 마셔라.'

'그거 다 배워서 써먹을 수 있을 때 되면 꼬부랑 할아버지 되어 있겠다.'


하... 이런 말 들으면 취미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지요. 


그럴 때 '잡스형'에게 물어봅니다. 잡스형, 스티브 잡스형, 사람들이 왜 이래, 왜 다 쓸데없다고 그래? 잡스형이 대답합니다. 언뜻 보면 하나의 작은 점처럼 보이니까 하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 세월이 흐르면 그 점들이 이어져서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지. 그렇게 모여지고 나면 비아냥거리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내가 대학 때 캘리그래피 수업 들은 게 맥 컴퓨터를 만들 때 도움이 되리라고 그때 생각했겠니? 재미있으니까 한 거지. 


지난 시절 살아오면서 조금씩 손댔던 취미 하나 둘이 슬금슬금 모여 선을 이루고 면을 만드는 상상을 해봅니다. 제법 괜찮은 그림이 그려집니다. 스무 살에 배운 것이 모여 오십에 꽃핀다면 오십에 배운 것이 모여 팔십에 꽃피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토닥거립니다. 그때까지만 야무지게 숨을 쉬자, 이렇게 다짐해 봅니다. 


다시 힘이 납니다. 


p. s. 하지만 정말 영어 실력, 기타 실력은 안 느네요. 확 에스키모 언어나 태평소로 바꾸어 버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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