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과 노력에 관하여
저는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합니다. 아마도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훨씬 동화에 가깝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화는 따뜻하고 현실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꿈꾸지요. 그래서 저는 현실의 팍팍함과 냉혹함에 부대낄 때면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잠깐씩 방문하곤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은 다 사랑스럽습니다만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캐릭터는 <<나루토>>라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록 리’라는 인물입니다.
<<나루토>>는 닌자 마을인 나뭇잎 마을의 여러 닌자들이 세상을 무너뜨리려는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긴다는 비교적 전형적인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를 따라갑니다만, 그 스케일이나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의 복잡성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입니다. ‘록 리’는 최고의 닌자를 꿈꾸지만 닌자로서의 재능은 정말 하나도 없어서 도술 비슷한 ‘닌술’은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닌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록 리’는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강력한 신념과 그 신념을 이뤄내기 위해 엄청난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지만 노력을 기울여 획득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극 중에서는 ‘체술’이라고 하는 무술)을 갖추고자 하고 마침내 그 소망을 이루어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 총명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똑똑한 아이들에 비해 무언가를 습득하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제 모습은 어른들에게는 조금은 안쓰럽고 측은하게 비쳤던 모양입니다. ‘노력은 정말 열심히 하지만 성과를 크게 얻지 못하는 아이’라는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그런 측은해하는 눈빛은 제겐 상처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낙심했지요. 왜 나는 천재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고요. 그런 제가 안쓰러웠던지 아버지는 제게 당신의 좌우명이라며 직접 쓰신 글귀 하나를 건넸습니다.
“천재는 노력가의 별명이요, 노력은 천재의 전유물이다.”
얄팍한 재능으로 빨리빨리 뭔가를 배워내는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진짜 천재들은 진득한 노력을 기울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사람이라는 가르침이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저는 늘 마음속에 새겨두었습니다. 어떨 때는 의심하기도 하고 회의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흘러가고 하나씩 하나씩 세상일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아버지 말씀처럼 남들보다 조금 빠른 알량한 재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중고등학교 내신 시험 점수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끈덕진 노력으로 얻어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끈덕진 노력도 때로는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베푸는 기회의 손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때부터 저는 스스로를 조금 늦되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삶에서 오는 자그마한 시련들이 견디기 쉬워졌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서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도, 군대를 다녀와서 학기 조정을 하려고 1년을 쉴 때도, 대학원 입학시험에 붙어놓고도 학점을 잘못 계산해서 졸업이 한 학기 늦어졌을 때도 그런 마음으로 더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 어른들 말씀처럼 저는 세상사 여러 가지에 대해 재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여 그 모자란 재능을 극복해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제 눈에 들어온 니체의 아포리즘이 있었습니다.
“재능이 없으면, 그것을 습득하면 된다.”
니체의 <<아침놀>>이라는 저작에 실린 말이었습니다. 힘이 불끈 솟고 언제나 다시 출발점에 서게 해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록 리 같은 신념을 가지고 아버지의 격려와 니체의 아포리즘을 잊지 않는다면 세상을 살아가며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처 받거나 낙심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도저히 흐르는 인생의 강물을 따라 여행하며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혹여 하늘이 기회를 부여한다면 더 넓고 멋진 바다로 뛰어들 기회를 얻게 되겠지요.
재능, 까짓 거 없으면 습득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언제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