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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Oct 23. 2020

그냥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에는 종종 운동을 위해서도 아니고, 어디 가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염없이 걷는 경우가 있었어요. 꼭 보고 싶은 것도 아니고 궁금한 것도 아닌데 전화기를 들고 '그냥' 친구에게 전화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전화해서 뭐하냐? 그렇게 물어보면 친구도 '그냥 있지' 그렇게 대답하곤 했고요. 그냥 서점에 불쑥 들어가기도 하고, 그냥 카페에서 몇 시간을 죽치고 있기도 했지요. 그냥 술을 마시고. 그러다 그냥 글을 몇 자 적기도 했지요. 조금은 권태로운 듯하면서도 달콤한, 시간이 입안의 사탕처럼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느낌을 주는 말입니다. 


문득 요즘 '그냥' 하는 일은 성격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에게 그냥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제가 거는 일도 줄었습니다. 그냥 술을 마시는 일도, 그냥 카페에서 죽치는 일도, 그냥 하염없이 걷는 일도 줄었습니다. '그냥'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그냥' 스케줄 표에 계획되어 있는 일정을 클리어해 나갑니다. '그냥' 중간중간 페이스북을 보고 '그냥' 모바일 축구 게임을 합니다. 요즘의 '그냥'은 더 이상 사탕 같은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입안이 말랐을 때의 퍼석한 느낌이랄까요. 


발전한 기술 때문인지,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진 까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해 중에서 가장 바쁜 때여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끄적였습니다. '그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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